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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었습니다. 저는 갓 스물이 되었고, 이유 없이 세상은 슬펐습니다.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이탈의 자유 뒷면에 ‘삶을 방목시킨 자가 그려놓은 그 고투의 흔적’까지 볼 수 있던 시인에게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호응 없는 열광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로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고민고민하다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가 수줍은 사랑고백을 했지만 마침 그때 그녀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야구 중계에 집중하고 있었다거나,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려
특별기고
대학신문
2006.05.14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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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진 말이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는 말이 있었다. 긴긴 겨울밤 창문에 부딪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헤세나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를 읽으며 꼬박 밤을 새우고 난 뒤에 만나는 아침햇살의 선선함이라니…. 그런 날 가슴속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신뢰와 삶에 대한 용기로 따뜻하게 술렁이고 머리속은 박하꽃밭에라도 들어선 듯 환하게 맑아졌던 것이다. 일기장 한 모퉁이에 ‘하얗게 밤을 새운 아침이다’라고 적은 뒤에 학교로 가는 길이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모른다.고등학교 1학년 늦가을로 기억된다. 교
특별기고
대학신문
2005.12.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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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우스꽝스런(?) 정열을 스탕달의 『연애론』처럼 철저하게 파헤친, 연애의 정열 못지않게 정열적으로 해부한 책을 일찍이 나는 보지 못했다.이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연애의 유형을 분류하며 각각의 특징을 잡아내는 거의 과학에 가까운 분석, 불가사의한 인간심리를 글로 풀어내는 정확한 문체에 압도당한 나는 나의 오랜 독서 습관대로 책의 앞뒤를 들추어 저자의 생애와 나이를 확인해보았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어떤 연애를 했기에, 어떤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길래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그토록 냉철하게 다룰 수 있었을까.프랑스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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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10.1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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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질에 대해서 논하면 복잡한 이야기가 되거나 폄하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인의 기질론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주도에 전승되는 본풀이로 당신(堂神)의 내력을 말하는 당신본풀이는 한국인의 기질을 논하는 적절한 사례다. 본풀이는 신화의 우리말로 무속의 제전인 굿에서 구연된다. 무당의 제주도 말인 ‘심방’이 대략 20분 내외로 부르는 것 가운데 ‘궤눼깃당본풀이’가 있다. 이 본풀이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술도, 밥도 잘 먹고 노래도 잘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이 본풀이의 주인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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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6.0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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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는 아직도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돼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유행한 연금술은 구리ㆍ납ㆍ주석ㆍ철 따위의 비금속을 금ㆍ은 등 귀금속으로 변화시켜 불로장생약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책에서는 연금술이 단지 철이나 납을 금으로 바꾸는 신비로운 작업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연금술이라 했다.꿈에 나타난 낯선 소년이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이집트의 보물을 찾게 될 것이라고 계시한다. 양치기 주인공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재산이었던 양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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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5.2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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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은 내게 나무나 새, 꽃 이름을 묻곤 한다. 내가 아는 이름일 때는 나도 신이 나서 가르쳐주지만 대부분 나도 그 이름들을 모른다. 그때면 상대는 “너도 몰라?” 하는 의아한 표정이다. 어느때는 상당히 실망까지 한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보니 ‘왜 내가 나무나 새, 꽃 이름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다. 내가 시골태생이어서일까? 아니면 내 얼굴에 그런 이름들을 잘 안다고 쓰여 있나? 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연들의 영향인가?지난 봄 어느날인가 어렵게 양평에 작업실을 지어서 대부분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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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5.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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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인도 중부의 한 시골마을인 빠뜨나 따몰리에서 한 여성이 불 속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이는 정치적인 의사표현도 아니었고 단순한 자살도 아니었다. 당시 그 여자의 나이는 65세. 남편의 죽음을 따라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자식과 주민들은 그녀를 막는 대신, 불에 타는 동안 향과 기름, 공양물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는 거룩한 의례였다.여인이 남편을 따라 죽는 인도의 고대 풍습을 사띠(Sati)라고 한다. 이 풍습은 현재 불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 잘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잊을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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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5.2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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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咆哮)라는 짐승이 있다. 이 동물은 양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눈은 겨드랑이 아래에 붙어 있다. 호랑이 이빨에 사람의 손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리는 어린아이 소리 같으나 사람을 잡아먹는다. 포효는 탐욕스러워, 사람을 잡아먹고도 만족스럽지 못하면 제 살을 물어뜯는다고 중국 신화는 이야기한다. 신화는 그 다양한 유형만큼이나 기능도 상이할 뿐 아니라, 하나의 신화라 할지라도 포효처럼 유순함과 광포함, 야만과 문명이라는 대극의 요소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문화적 실재이다.1989년 6월 3일 중국 천안문광장에서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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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5.1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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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그동안 ‘비합리적인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합리성을 강조하는 오늘날, 신화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이는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그 지역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계가 있다.『대학신문』에서는 서양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일본,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의 신화를 통해 그 문화권에서 발생한 사회문제들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일본의 신화는 흥미롭다. 신화 자체의 발상뿐 아니라 『일본서기』나 『고사기』와 같은 관찬 역사서의 첫머리에 신화적 기술이 장황하게 펼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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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5.0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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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다닌 1970년대 후반은 이성과 정의가 부정되던 암울한 시기였다. 지금의 학생들처럼 고등학교까지 그저 진학을 위한 도구로 존재했던 내가 대학에 들어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당연히 나를 찾는 일이었고 자연스럽게 학생운동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다. 독서와 학습은 당시 학생운동의 주요활동이었고 1학년 역사, 2학년 경제, 3학년 정치 및 사회, 4학년 사상 및 철학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양서에 대한 목록이 있어서 비교적 고생하지 않고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소설, 잡지, 전문지 등을 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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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4.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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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는 지도학생들과 설악산에 엠티를 갔다. 낙산사와 홍련암을 돌아 그 절벽 밑 바닷가 달빛 출렁이는 파도 옆에서 회를 먹었다. 그 밤바다에서 붉은 색조를 띈 특이한 달과 출렁이는 물결소리에 곁들인 회맛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양양 산불에 낙산사 절 일대가 다 타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텔레비전에서 그을린 해수관음상을 보게 되니 마치 내 추억의 사진을 태운 듯 씁쓸하다. 이번 불에 타 죽은 나무들을 애도하면서 나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생활하며 인간의 삶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나무의 신화, 내가 조금씩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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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4.0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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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성룡이 주연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았다. 아무래도 쥘 베른(Jules Verne)의 동명소설 『Re tour de monde en 80jours』를 재해석하기에는 성룡의 나이가 너무 많았던 듯 싶다. 현저하게 무뎌진 성룡표 액션. 짠해지는 맘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영화의 허술한 재구성이 오히려 원작의 맛과 의미를 되짚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확실치 않지만,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처음 접한 것은 TV에서 방영된 영화를 통해서였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 아들녀석 나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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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4.0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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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겨울은 유난히 매섭다. 시카고에 살아본 사람들이나 겨울에 시카고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시카고의 계절적 특징을 늘 대화로 삼을 정도다. 4년 동안 시카고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아마도 그 때까지 내 인생의 가장 추운 겨울을 그 곳에서 보냈던 것 같다.박사 과정 2년 반을 마친 후 논문 자격시험이라는 큰 짐을 덜고 나면 날아갈 듯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험을 통과한 직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세포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수반한 이상한 병에 걸려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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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3.2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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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내 삶은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에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나이 먹어도 철들지 못한 영혼에게 책읽기의 여정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조금 잔인한 일이다. 보르헤스의 표현대로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책을 찾아 편력을 했고, 하고 있다. 낙서 가득한 내 영혼이 그나마 책에 의해 정화되는 지복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글쓰기의 과정은 예상했던 것 만큼 수월하지만은 않다. 편의를 위해 일단은 독서의 범위를 대학시절로만 축소해 놓고 보기로 한다.모든 젊은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가장 난세라고 여기겠지만 우리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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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3.1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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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로 책을 옮기면서 대학 때 읽었던 문고판 서적들이 먼지 속에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책을 뒤지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즐거움에 빠지다가 낡은 책자에 시선이 집중된다. 카프카의 『변신』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했다니! 대학 초년 실존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던 내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던가.『변신』의 일독은 그 후 카프카의 다른 작품과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하이데거의 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변신』이 담고 있는 의미가 다의적이어서 다양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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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3.12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