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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릴 적 꿈은 물론, ‘글쟁이’였다. 하지만 백일장 따위에 나가면 번번이 떨어졌다. 그래도 나는 꼬박꼬박 일기를 쓰면서 위대한 작가가 되겠노라고 다짐하곤 했다. 더 기고만장한 건 무턱대고 그 가능성을 믿었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재주가 없는 아이였다. 달리기는 늘 꼴찌였고 노래는 거의 음치였고 그림은 젬병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글 읽기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교과서 말고는 책이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 내가 읽던 책들은 주로 도서관이나 친구 집, 친척집에서 빌려 오거나 슬쩍 훔쳐 온 것들이었다. 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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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3.0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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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내에 일본연구소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일본은 한국인들이 무시하거나 도외시하기에는 너무 가깝게 있고, 역사적으로 그만큼 좋든 싫든간에 많은 접촉이 있어 왔던 것이다. 일본을 배척하는 분들까지 일본에 대한 연구는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일본에 관한 우리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서울대학교에 일본연구소를 설치하는 데에는 그 필요성이 문제가 됐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충실히 연구를 진행할 만한 준비가 되었는가와 우리의 연구방침이 어떻게 설정되느냐의 문제였다. 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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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5.03.09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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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을 1∼2년 앞둔 어느 날, 집안 형님이 한문 식의 왼쪽방향 횡서로 가갸거겨 표를 쓰시고 소나무 여린 가지로 연필보다 조금 굵은 지시봉을 다듬어 주셨다. 얼마가 지났을까, 산골 초가집 웃방 바닥에 벌렁 누우면 천정에 덕지덕지 찢어 바른 잡지나 신문지의 글자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이 잡힌 첫 읽을거리는 지금 짐작컨대 선친께서 배우셨던 왜정 말 간이학교 조선어 말본의 ‘박혁거세 탄생 설화’와 단발 ‘비양기’[비행기] 이야기였다. 그 다음엔 아랫집 아저씨에게서 김성환의 ‘만화 삼국지’를 조르고 졸라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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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4.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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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박박 밀고 시커먼 교복을 입고 들어간 중학교는 실망부터 앞섰다. 입학 전에 미리 가 본 교정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같은 학교를 배정 받은 국민(초등)학교 동창 서넛이 자전거 한 대를 이리저리 타고 가서 교문을 들어서니 운동장이 다니던 학교의 반 만하였다. 그 손바닥 같은 데서 교복 차림의 중학생 형들이 야구공만한 고무공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 크기에 딱 어울리는 공이었다. 국민학생 때도 큰 공을 차면서 놀았는데 그것을 보니 더 이상 축구를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라서 좀 맥 없이 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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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4.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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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명문선독과 비평’이라는 교양과목을 몇 년 동안 담당한 적이 있리 고전 중 좋은 글들을 읽고 선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 학기마다 교재를 재편성하느라 고전들을 다시 검토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삼국유사(三國遺事)』 「효선(孝善)」 편에 수록된 「진정사효선쌍미(眞定師孝善雙美)」이다. 어떤 학기인가 강의 자료를 뽑던 중 이 작품을 다시 읽고서는 이것이 단순히 진정법사가 효도와 선업을 다 이뤘음을 기렸을 뿐 아니라 그 어머니도 기린 것임을 비로소 알았다.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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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4.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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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즐기게 된 건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한참 후의 일이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시절 시를 ‘작업’에 필요한 소품 정도로 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필수품같이 되었다. 책방에 가면 시집 코너로 발길이 가고 신문의 광고나 서평에 난 시집들을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바쁜 척 시간없는 척 생활하는 틈 사이에서 시는 내게 안성맞춤이다. 짜투리 시간에 시 한편은 후루룩 읽어버릴 수 있다. 한 입에 순식간에 입속으로 감출 수 있는 길거리 간식 같다. 6천원에 60편, 한편에 100원이다. 입안에 물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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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4.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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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영국을 자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친구들이 몇 있다는 이유로 지구환경과학 BK21 사업단과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 사이의 국제교류활성화 책임을 떠맡은 탓이었다. 이럴 때면 자투리 시간을 쪼개 아끼는 학제(學弟) 일우가 공부하는 캠브리지를 방문하여 회포를 푸는 일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3년 전 겨울, 그 날도 캠브리지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역내 서점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엘니뇨』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자연스레 손이 그리로 간 것은 물론이다. 캠브리지로 가는 기차 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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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4.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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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동장군이 특히 기승을 부렸다기보다는 내가 겪은 겨울이 그러했다. 그동안 신부가 되기 위해 15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외길을 걸어오다가 신부가 되기 직전 스스로 길을 바꾸면서 자초하게 된 겨울이었기 때문이리라. 붙잡는 따뜻한 손들을 뿌리치고 무작정 짐을 챙겨 나오기는 했으나 막상 갈 곳도, 잠잘 곳도 없었다. 밤늦게까지 이길 저 길을 걷다보면 서울의 불빛들은 명멸하는데 내 몸 하나 눕힐 데가 없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신부가 되기 위해 세속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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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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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에서 자랑하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른다면,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白鹿潭)』(1941) 초판본을 뽑을 것이다. 이 책을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한 것이 30년 전 일인데, 그것이 바로 엊그제의 일 같다. 시집 『백록담』의 표지에는 노란 바탕 위에 나무 사이로 사슴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그 옆에 환상처럼 날고 있는 나비 한 마리. 『백록담』을 펼쳐들면 이 시집을 구했을 때 느꼈던 그 벅찬 기쁨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시집을 넘겨볼 때마다, 나는 시인 정지용 특유의 언어적 조형성에 탄복한다. 정지용 시를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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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3.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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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살다보면 삶의 무게를 더해 주는 사건이나 계기를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평생 삶의 방향을 결정해 주며, 또한 사회문제에 부닥쳐 특별한 사회적 행동을 요구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 분별의 좌표가 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입시에 매달려 있는 중등교육 처지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사회문제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시절에 군사교련에 대한 반대 입장의 교내 시위 경험을 딱 한번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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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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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을 내가 처음 읽은 것은 본교 대학원에 다니던 늦가을이었다. 내 책에 1984년 10월 26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으니, 이맘때쯤이었나 보다. 벌써 이십 년 전이지만, 이 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기억에 생생하다. 읽어도 이해가 안 가고 읽을수록 어려워져서 머리를 쥐어짜며 읽던 책이다. 그 늦가을 날의 차가운 새벽 공기에 바짝 졸렸던 마음, 과연 이 책을 이해할 날이 오기는 할까 하는 회의가 떠오른다.그렇게 어려웠는데, 왜 이 책에 매달렸을까? 당시는 루카치를 토대로 작품을 읽는 흐름이 루카치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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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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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 연재되던 「태백산맥」을 기다리는 일은 감질났다. 한 달을 기다려 잠시 달콤한 만남이 끝나면 다시 이별이었으니, 견우 직녀가 따로 없었다. 나중에 완간된 뒤에도 대학 도서관에서 『태백산맥』을 빌리기는 정말 어려웠다. 아무리 서둘러도 나보다 빠른 학생들은 늘 넘쳐났고, 허탕을 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니 제3권 빌린 뒤에는 제8권 읽고 다음에는 제2권을 읽는 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학생들의 손길을 거친 책은 철사로 동여매고 온통 ‘반창고’를 붙인 상처투성이였다. 아마도 닷새를 걸어가 책 한 권을 베껴 와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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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3.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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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흥행기록 못지 않게 판소리를 우리 곁에 다가서게 한 영향이 컸다. 지난 7월 소리무대를 저승으로 옮긴 박동진 명창은 CF 광고에 출연하여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판소리의 대중화에 한 몫 했다.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멋과 풍류가 어우러진 민중음악이지만, 일반인들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격이었다. 서양음악이론만 배워 온 젊은이들은 클래식이나 팝송ㆍ대중가요에 더 심취해, 판소리는 고리타분한 옛 소리로 관심 밖이었다.민족문화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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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
2003.09.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