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지 발전 가로막는 학술지 평가
학술지 발전 가로막는 학술지 평가
  • 송규민 기자
  • 승인 2010.11.21 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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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평가제도 진단]

학술지 등재 심사 통과 위한 신생 학회 난립, 부정 심사 의혹 제기돼
국가기관 주도의 획일적 평가 아닌 학계 커뮤니티 내부 엄정 심사로 권위 확립해야

지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12개 대학 로스쿨 학술지가 부실하게 심사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후 교육과학기술부가 연구재단에 등재 학술지 혹은 등재 후보지 실태 조사를 요청했다. 현재 국내에는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를 육성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연구재단)이 학술지 평가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편법만 조장하는 등 학술지의 발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현재 연구재단 등재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아보고 학술지 질적 향상을 위해 학계가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질적 평준화 야기하는 학술지 등재 제도

국내 학회에서 발간하는 많은 학술지는 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와 비등재 학술지로 나뉜다. 학회가 해당 학술지 등재를 요청하면 연구재단의 심사에 따라 등재가 결정된다. 연구재단 학술지원팀 이덕우 팀장은 “정량평가(30%), 규제전문가평가(50%), 패널평가(20%)를 통해 학술지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100점 만점에 75점 이상을 받은 학회지가 등재 후보지로 승인되고, 정량평가(45%)와 패널평가(55%)로 이뤄진 심사를 2회 실시한 후 두 번 모두 80점 이상을 받으면 등재 학술지가 된다. 이덕우 팀장은 “현재 연구재단에 등재 심사를 요청하는 학술지는 연평균 150~200개, 이 중 등재지가 되는 것은 60~70%로 집계된다”고 말했다. 높은 등재 승인율은 연구재단이 엄정한 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배균 교수(지리교육과)는 “등재지에 실린 논문 가운데서도 수준 낮은 논문이 많다”며 “연구재단의 등재지 심사가 엄밀히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고 의문을 표했다.

등재 심사의 엄정성에 대한 의혹과 더불어 등재만을 위한 학술지가 넘치는 상황이 지적되기도 한다. 연구재단이 학술지를 등재한 학회를 지원하면서 일부 학회는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사무실도 갖추지 않고 수준 이하의 ‘유령’ 학술지를 펴내고 있다. 

학회가 학술지 편집 과정에서 등재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많은 양의 논문을 받는 것도 문제다. 이덕우 팀장은 “현재 정량평가의 하위 항목인 탈락율은 학회 평균 60%이지만 몇몇 학회가 부적합한 논문을 받은 후 고의로 탈락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등재 시스템의 부작용을 인정했다. 탈락율은 해당 학술지가 얼마나 많은 검토와 취사선택을 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탈락율이 60%라는 것은 해당 학회가 투고 논문의 60%를 탈락시켰다는 뜻이다.

이처럼 편법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은 등재 시스템하에서는 외형적으로 양적 성장을 이룬 듯 보여도 학술지 질적 수준 자체는 담보하기 어렵다.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우한용 교수(국어교육과)는 “현 시스템에서는 등재를 목적으로 논문의 수를 억지로 늘리려다 보니 수준 이하의 논문 작성으로 연구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배균 교수 역시 “국내에 지나치게 많은 학술지가 난립해 실제 부적합하거나 수준 이하인 논문이 게재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학문 간 부익부 빈익빈 조장하는 KCI 제도

연구재단은 양적 심사에 치우친 기존 등재 시스템에서 탈피해 논문의 질에 초점을 둔 ‘한국형 SCI (Science Citation Index)’ 지수인 KC I (Korea Citation Index)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SCI 지수는 미국 톰슨사가 개발해 영미권에서 널리 사용되는 학술인용색인으로 학자들이 논문을 인용하는 지수인 IF(Impact Factor)를 기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박배균 교수는 “SCI 의 IF 지수는 논문에 대한 학계 내부의 평가를 반영해 논문의 수준을 연구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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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손혜영 기자 rewjie@snu.kr

연구재단은 국내 논문에 대해 ‘인용 지수’를 도입한 KCI 제도를 통해 양적 팽창에만 치우친 국내 학계의 풍토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덕우 팀장은 “장기적으로 논문의 양이 아니라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학자들의 인용 지수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학계는 학술인용지수를 색인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한용 교수는 “학자 간 논문 인용이 시행되면 논문의 질적 향상은 물론 학자 사이의 교류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KCI 지수가 현재 질적 수준이 저하된 국내 학계의 근본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SCI의 문제로 지적되는 학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KCI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때문이다. 조만형 교수(한남대 행정학과)는 “SCI 지수가 높은 논문이 속한 학문에는 학자들이 많이 몰리고 연구자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다시 SCI 지수가 높아지는 ‘부익부 빈익빈’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국내 학계의 인기 학문 연구 인력 쏠림 현상이 KCI 제도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학문마다 외국 학술지 투고 정도가 다른 점 역시 KCI 제도를 낙관적으로 보기 힘든 이유다. 조만형 교수는 “인문사회계 중에서도 국문·국사학 등 논문이 대개 한국어로 발표되는 분야에서는 KCI 제도가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지만 경제학 등 영어 논문 출판이 활발한 분야는 KCI 지수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공계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다. 메이저급 이공계 학술 논문은 해외 학술지에 투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실 있는 학술지 위해선 학계 내부의 엄정한 심사 뒷받침돼야

한 기관에 의한 획일적 평가지수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모든 학문에 대해 동일한 학술인용색인을 적용하지 말고 학문적 고유성을 존중해 국가가 지원 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한용 교수는 “한국 고대사와 같이 꼭 필요하면서도 논문 수나 연구 인력이 부족한 분야에서는 인용 지수를 따지는 게 오히려 해당 학문 발전에 좋지 않다”며 “현재 학자들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학문별 학술인용지수 제도에 대한 계획이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학계 자체 내의 자율적 기준과 심사를 도입해 권위 있는 학술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이준호 교수(생명과학부)는 『네이처(Nature)』,『셀(Cell)』 등 권위 있는 해외 학술지를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이들 학술지는 해당 국가에 의해 이분법적으로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학자 커뮤니티 내부 평가로 세계적 권위를 획득했다. 가령 『네이처』지의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는 박사급 이상 편집진이 참여해 동료 평가(peer review)에 적합한 논문을 엄격하게 선별하고 약 80%의 논문을 탈락시킨다. 이준호 교수는 “남은 20%의 논문은 동료 평가에 맡겨져 신규성, 완결성, 논리성 측면에서 치밀하게 분석돼 수준 높은 논문을 가리기 위한 작업이 철저하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이제 학술적인 성과를 국가 기관이 ‘등재지’와 ‘비등재지’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로는 질적 수준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조만형 교수는 “학술지는 국가 기관이 아니라 학자 커뮤니티의 과학적 평가로 권위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학계 자체의 노력으로 논문 수에 얽매이지 않고, 질을 담보한 권위 있는 학술지가 나올 수 있을지 그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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