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호 지음 ㅣ 푸른숲 ㅣ 266쪽 ㅣ 1만3천원

‘청춘!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 민태원의 『청춘예찬』 첫 구절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인생의 봄’에 바쳐온 선망과 찬사가 담겨있다. 그러나 지금도 청춘이 그러한 예찬의 대상인지는 의문이다. 일명 ‘20대 포기론’은 사회변혁을 주도해야 할 20대 청춘들이 무기력하고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며 이들을 사회의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인식한다. 당사자마저 스스로를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는 ‘호모 스펙(spec)쿠스’가 아니면 ‘잉여’로 정의하는 현실, 이곳에서 청춘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지난달 출간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청춘, 특히 20대를 초라하고 비겁한 존재로 몰아가는 세태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신(新)청춘예찬’이다. 저자 엄기호는 자신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겪어 글을 쓰는 정신노동자’라 소개한다. 책은 그런 저자가 지난 2년간 강의실에서 20대들과 부대끼며 함께 토론하고 강의한 결과물이다. 강의하며 모은 A4 5천 쪽짜리 리포트를 분석한 저자는 대학·정치·사랑·돈 등 20대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철저히 그들의 언어로 표현해 전달한다.

저자는 젊은이들을 비겁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비난하는 ‘20대 포기론’이 기성세대의 경험과 사고방식에 갇힌 오만에 불과하다며 날을 세운다. 기성세대의 청춘에서 대학생은 희소한 고등교육의 수혜자로서 자연스레 지성인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는 요즘 20대들의 사회참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불안해지는 경제 상황 역시 20대들이 사회참여보다 개인의 미래를 위해 아르바이트에 투신하도록 종용한다.

20대의 위기 이면에는 이처럼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 민주주의가 절대적 가치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 지금, 민주화에 투신했던 486세대는 탈정치화된 20대에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자신이 꿈꿀 수 있는 것은 삼성 CEO가 아닌 ‘삼성맨’이 된 현실이라며 ‘혁명’ 이후에도 계급적 불평등만 고착됐을 뿐이라는 냉소를 보낸다. 즉 그들의 냉소는 탈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적 사유를 다르게 표현하는 ‘언어’인 것이다. 한편 최근 트위터에서 유행하는 선거 후 ‘인증샷’은 정치참여를 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성세대와 다르게 젊은이들이 선거 자체를 오락거리로 소비하며 보내는 냉소다.

저자는 사랑에 대해서도 기성세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20대들의 속사정을 들어준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이상적인 순애보 대신 형식적 ‘연애’를 택하고 질질 끌기보다 ‘쿨’하게 헤어지는 20대를 비판한다. 그러나 저자는 젊은이들이 사랑을 나누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인프라조차 제공받지 못하고 사랑을 오로지 개인의 영역으로만 돌리는 사회에서는 더치 페이 등의 개인주의적 행동이야말로 오히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많은 청춘들은 기성세대의 일방적 힐난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자신을 쓸데없는 짓에 몰두하는 잉여라 명명하고 만다. 그러나 저자는 ‘쓸데없는 열정’을 불태우는 ‘쓸데없는 청춘’은 없다고 힘줘 말한다. 필요한 것은 세대간 소통이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관점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20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20대 역시 자신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억압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닌가”라고.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