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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
윤지양

작은 모자는 무덤가에서 태어났다- 무덤은 목마 할아버지의 무덤이다
다섯 살,
아이스크림처럼 녹다 만 깨잘깨잘한 흙길에서
파란 눈을 까맣게 뜨고 있던
목마.

단추 같은 눈동자와 마주친다- 작은 모자 아래 깜빡인다
젖은 흙길에 할아버지의 수건 냄새
여름 햇볕에 그을린 빨간 비닐 천막을 뚫고,
난다!

무지개 노래, 무지개 노래, 빠알갛게 달아오른 노래,
외할머니 쉰 참기름 묻은 저고리 품에 안겨
게으른 하품 섞어 옹알거린다
목마 할아버지 목장갑에 쥐어드린 동전 하나엔,
손때가 반, 쉰 참기름이 반,
알사탕 햇빛 양 볼에 채우고서
꼬옥 잡는다, 손아귀에 다 못 들어간 나무 손잡이,
목장갑 낀 흠지덕한 손…

늙은 여름날,
목장갑도 없이 헐어버린 손으로
떨어진 모자를 줍는다.
타다 남은 천막을 기억의 불꽃 앞에 다시 세운다.
저문 흙길에 단내가 피어오르면,
아이스크림 녹은 곳에
굳은 살 박힌 검은 모자를 찾아가자.
무덤은 목마 할아버지의 무덤이다.

오색 빛깔 천막을 태울 때
수건 냄새, 쉰 참기름 냄새, 목장갑 냄새,
멀리서 이는
여름만큼 빨간 흙먼지.
무덤은 태운 기억의 축적이다.
식지 않는 재 속에서 모자를 꺼낸다. 목마는 언제나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있다.

작은 모자 속에 다섯 살의 바람이 불면
저물지 않는 언덕에 쏟아지는 무지개 노래.
외할머니 허리춤에 쌈지를 더듬어 찾는다
무덤가에서 다시, 목마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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