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다은 기자  daeunlee@snu.kr
핏물이 낭자하고 뼈가 오독 부러지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 때문일까. 김중혁의 소설 『좀비들』에는 “살이 썩어문드러져 덜렁거리는” 좀비를 “물컹물컹한 살덩어리를 내려치고 목을 몸 안으로 박아넣”으며 해치우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표현돼있다. 심지어 죽은 가족이 좀비가 돼 돌아오고 누군가는 좀비에 물리기까지 한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단편 「1F/B1」에서는 건물관리자들이 정전된 건물의 암흑 속에서 얻어맞고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내리게 하더니 이번에 들고 나온 첫 장편에선 아예 작정하고 인물들을 죽음 앞에 내던진 것이다.

이처럼 『좀비들』을 꿰뚫는 테마는 끔찍한 ‘죽음’이지만, 등장 인물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철없어 보일 정도로 유쾌하다. 자신을 ‘대책 없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김중혁. “21살이라구요? 그럼 앞으로 세 번은 실패해도 되는 나이네요.”라는 그의 말에서 등장 인물이 보여주는 유쾌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좀비’ 아닌 ‘진짜 인간’으로   살아남는 법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충격 같은 게 있냐는 말이죠? 없어요.” 죽음에 대한 남다른 경험이 있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다. 기대와 달리 답이 시시해 힘이 빠졌다. “근데 이상하게도 늘 죽음에 대해 재밌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죽음이란 주제를 살짝 비틀어 유쾌하게 그린 것에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는데 참 ‘대책 없는’ 창작 동기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엉뚱한 그의 작품답게 『좀비들』의 주인공 일행이 좀비 연구소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은 한 편의 코미디다. 친구가 좀비에 물린 긴박한 상황에서도 주인공 채지훈은 ‘좀비에게 직접 물려본 사람이 쓰는 좀비 써바이벌 가이드’를 써보라는 둥 농담 따먹기를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는 인물들은 바로 제 모습이에요. <하우스>나 <빅뱅 이론>같은 미국 드라마에서 인물들이 탁구공처럼 주고받는 재치 있는 대사에서 영향을 받았죠.”

하지만 이렇게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서술로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게 주어진 역할은 소소한 변화에 대한 수다 떨기라고 생각해요. 여름날 잔디밭에 누워있는데 바람이 불어 모자가 휙 날아가는 것 같은 거요.” 죽음을 웃음으로 풀어내고 그 이면에 자신만의 성찰을 담아내는 그는,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담 없이 게임을 즐기는 8번 타자인 셈이다.

실제로 『좀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중혁 자신만의 철학과 언어로 삶과 죽음이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기에 그를 철없는 낙천주의자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살아있지만 좀비와 다를 게 없던 채지훈은 좀비의 텅 빈 눈 속 죽음의 허무함과 마주한다. 그리곤 좀비처럼 단순히 ‘움직이는 고깃덩이’가 아닌 생기 있는 ‘진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모든 것을 0으로 만드는 죽음에 맞서 살아남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일깨워야 함을 깨닫는다. “사후세계나 윤회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순 없죠. 죽음은 불확실하고 짐작할 수 없으니까요.” 불확실한 죽음 앞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주어진 삶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역설적이게도 결국 삶의 매 순간을 즐기고 최대한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삶에 대한 욕망’이 교과서적인 성실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규칙을 준수해야만, 대책이 있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며 결과를 계산하지 않은 채 즐겁게 방황하고 삶을 낭비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매뉴얼에 따라 안테나 수신 감도를 체크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던 채지훈은 이제 좋아하는 이에게 막무가내로 키스하며, 친구를 살리려고 군부대로 쳐들어가는 ‘대책 없이 똘끼만땅’한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저지르고 보게 된 것이다. 작가는 『좀비들』을 성장소설이라 말한다. ‘의미 있는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채지훈은 삶이 1부터 10까지의 불연속적인 자연수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수 사이에 실은 무수한 유리수가 있듯이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삶의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이런 태도는 작가 자신의 삶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어떤 일이 가치가 있다면 서툴게라도 하라는 말을 좋아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대로 하는데 그 다양한 활동들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그 작품은 다시 저를 ‘확장’시키죠.” 그는 한때 음악을 했었고 일간지 기자로 뛰었으며, 지금은 작가 겸 인터넷 문학 라디오 DJ다. 그의 카툰 ‘상상초월’은 군더더기 없는 단순명료한 선과 발랄한 색채, 그리고 “산불을 예방하려면 아예 산을 없애버려요. 그럼 산불을 일으키는 인간도 없어질 테니까.”라는 식의 발칙한 유머를 자랑한다.

박해 받는 ‘좀비들’의 모세

한편 김중혁의 작품 속 좀비와 죽음은 개인을 성장시키는 장치만은 아니다. 그 이면엔 잔인한 세상에 치이고 잊혀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좀비들』 속 인물들은 대개 좀비를 저급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무시하고 심지어 총으로 마구 쏴 죽이죠. 이주노동자나 성소수자를 ‘다르다’고 낙인찍는 이들과 닮지 않았나요?” 좀비와 인물들의 대면을 통해 ‘진짜 인간’이 되려는 개인의 성장을 그렸다면, 좀비의 괴성 속에는 사회가 소외시킨 이들의 비명을 담아낸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 좀비들은 음악을 들려주면 온순해지고 무차별 사격에 저항하지도 못하는, 힘없고 애처로운 존재로 묘사된다. 채지훈은 심지어 좀비를 처치한 후엔 살인을 저지른 기분을 느끼며 조용히 무리지어 있는 좀비들을 “괴물 같다기보다 상처를 크게 입은 과묵한 인간처럼” 느낀다. 좀비에 대한 연민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뚱보130이 좀비에 물린 후 더 강렬해져, 결국 그는 뚱보130을 비롯한 좀비들을 이끌고 ‘디아스포라’를 감행하고, 좀비들은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를 따른다.

이처럼 채지훈이 ‘좀비들의 수호자’로 성장한 배후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는 김중혁 자신이 있다. 그는 이전 작품 「유리방패」와 「1F/B1」에서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나 홀대받는 건물 관리인처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의 대변인이 돼왔다.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선 “훌륭한 선인장이 없듯 훌륭한 인간도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라며 쓸모없다고 평가받는 것들도 사실 그 존재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말한다. 그가 구상중인 작품은 단순하고 멍청하지만 솔직한 10대들의 이야기다. 세상에서 소외된 ‘불량한’ 10대들이 삶을 노려봐도, 김중혁은 너흰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다독이며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을 것이다.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명함은 받자마자 찬찬히 살펴봐야 예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집에 돌아와 한 숨 돌린 후에야 김중혁의 명함을 제대로 볼 여유가 있었다. 그가 직접 디자인한 명함의 앞면엔 입을 일자로 꾹 다물어 퉁명스러운 얼굴이, 뒷면엔 활짝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문득 『좀비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서로 상반되는 실험 결과가 나와도 상충하는 두 개의 진실이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여기는 과학자도 있다는 얘기였다. 명함 양면의 웃는 얼굴과 찡그린 얼굴은 모순되지만 모두 김중혁을 나타내는 얼굴이듯, 죽음이라는 공허한 마지막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그럼에도 유쾌한 태도로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진실이다. 기자가 만나본 작가 김중혁은 철없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라 죽음과 삶이 부딪치는 틈새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이끌어내는, 진짜 삶의 명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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