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쪽 ㅣ 1만6천8백원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합리주의적 사고는 인류에게 많은 달콤함을 안겼다. 특히 서구 의학은 질병을 야기하는 원인의 소거에 골몰한다는 점에서 인과구조에 바탕을 둔 합리주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서구의학은 ‘미신과 주술’에 미혹된 사람들을 ‘계몽’해 건강과 수명 연장이라는 혜택을 선사했다. 하지만 지난 20일(토) 번역·출간된 『리아의 나라』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선물’은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칼럼니스트인 저자 앤 패디먼은 언론인 특유의 비판적 시선을 통해 소수 민족과 미국 의료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다룬다.  인종의 ‘도가니’라 불리는 미국의 문화적 갈등을 의료라는 구체적 영역에서 조명하는 『리아의 나라』는 1997년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리아의 나라』는 라오스 소수 민족인 몽족의 리아라는 아이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뒤의 간질병 진료 기록을 추적해가는 탐사 르포로, 여러 취재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 이주한 소수 민족의 의료 현실을 드러낸다. 또 리아가 태어나서부터 식물인간이 되기까지의 과정뿐 아니라 문화적 특색이 남아있는 몽족의 이야기가 함께 제시돼 독자들이 리아의 이야기를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리아의 가족은 리아가 병에 걸린 것은 혼이 육신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거듭되는 발작과 쇼크를 악귀 ‘다(dab)’가 벌인 짓이라 믿는 리아의 부모는 언어적 장벽에서 비롯된 오해와 더불어 딸의 생기를 앗아가는 약을 강권하는 미국 의료진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국 의료진 역시 리아의 부모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 둘 사이의 문화적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리아의 병증이 심화되자 의료진이 정부에 제소해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이후 노력 끝에 리아는 가족에게 돌아오지만 가족과 의료진 간의 마찰은 끝나지 않는다. 가족들은 미국 의료진의 투약 지시를 따르지 않고, 리아는 발작이 심화돼 끝내 혼수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처럼 리아가 서구의학의 혜택을 받지 못해 식물인간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그 책임을 리아의 가족에게 돌리지 않는다. 저자는 몽족의 전통 주술사 ‘치넹’에 의한 ‘영적 치료’가 효과적이었던 사례를 제시하며 미국 의료진이 서구식 치료법을 강행하기 전 ‘삶’보다 ‘영’을 먼저 들여다보는 몽족의 전통 요법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전통 요법의 효과 여부는 차치하고, 몽족의 전통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의료진의 태도는 리아 가족의 서구의학에 대한 거부감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앤 패디먼은 단순히 의료 혜택을 베풀기에 앞서 소수 민족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 의사가 몽족의 전통 제의를 수행할 때 예방 접종의 메시지를 포함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예방 접종에 동의하게 했다는 사례를 언급하며 소수 민족이 서구의학을 문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그 혜택도 수용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제시한다. 즉 비합리주의를 합리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식의 일방적 강요는 지양돼야 하며 선의가 선의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문화적 배경을 아우르는 소통의 진정성이 우선돼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출간 이후 미국 의대 필수 교양 도서로 지정된 『리아의 나라』는 미래의 의사들에게 진정한 치료는 환자의 문화적 배경 하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지침을 제공한다. 책 끝부분에 리아의 혼을 다시 부르기 위한 ‘치넹’의 “돌아오라”는 부르짖음은 미래의 의사뿐 아니라 합리주의적 사고에 경도돼 다양성의 가치를 잊었을지 모르는 우리 모두를 향한 호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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