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체계 미비로
군·민 피해 가중시킨 정부의 무지
‘벙커’에서 나와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대북대응책 고민하길

이상석 편집장

지하에 벙커를 짓는다. 여기서 벙커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벙커에서 밥을 먹으면 그냥 밥도 짬밥이 되기 때문이다. 벙커에 가기 전, 공군 조종사 가죽잠바는 빠뜨려서는 안될 필수 장착 아이템이다. 아뿔싸, 한눈을 팔았다. 컨트롤에 미숙해 부대지정이 늦어졌다. 아군 몇 명이 전사했다. 상관없다. 여차하면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하면 된다.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책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때문에 다시 시작한 게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오락가락 하는 플레이에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난다. 시시콜콜하게 게임 이야기 따위를 하려는 게 아니다. 천안함 침몰 사태로 해군 장병 46명이 어둠속에서 영문도 모르고 수장된 지 불과 8개월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3일 북이 연평도에 가한 포격으로 민간인 2명, 장병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으로 비통하다.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 “단호히 대응하되 상황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 “확전방지에 만전을 기하라고 한 적 없다”, “다시는 도발할 수 없도록 몇 배로 응징해라”, “경우에 따라서 타격하라”.

단호히 대응하거나 확전을 방지한다. 정부의 지시가 단호함인지 확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인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서 청와대가 비판받고 있는 이유는 한반도 위기상황 속에서 안보, 국방 및 위기 관리 체계에 대한 무지와 무대책 때문인 것만은 분명하다. 확전을 방지하는 것은 교전수칙에 명시된 기본적 수칙임에도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확전을 방지하라 지시했다는 자신의 발언을 번복한다. 논란이 됐던 발언, “실전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부와 군 당국은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막장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무지와 무대책에서 나온 정부와 군 당국의 위기관리대책은 사실상 우리 군과 국민의 피해를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애초 북의 도발을 암시하는 전통문이 군으로 발송돼 대비가 가능했지만 우리 군은 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으며, 주민들에게 미리 통지하지 않아 무고한 주민들이 다치거나 희생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또 이렇다할 대비 없이 시작된 훈련에서 우리군은 북의 포격에 손 쓸 재간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대응 사격을 하기 위해 자주포를 준비했지만 K-9자주포의 6문 중 절반이상인 3문이 고장난 상태에서 제대로 대응을 했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확실히 임기 초반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좋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국방의 탈을 쓴 원전 수주 파병,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 등과 같이 경제적 뒷거래를 하기 위한 사업만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국방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대북 대응 체계 및 위기 관리 체계 구축에는 손을 놓았다. 이러한 현 정부 기조로 한반도 정세의 위기 수준은 감소되기는 커녕 더 높아졌고 무대책에서 나온 대북정책기조는 이도 저도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참담한 결과만 불러왔을 뿐이다. 정부가 위기를 관리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것인지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지난 2003년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월드사이버게임즈(WCG) 2003에서 스타 우승자와 대결을 펼친 바 있다. 당시 이 경기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5개월간 연습했다는 후문이 돌았지만 결과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GG(GoodGame). 게임이든 실전이든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에 대한 올바른 대응책이다. 가죽잠바를 입고 벙커에 들어간다 해서 전략가가 될 리 만무하다. 이제 잠바를 벗고 세상으로 나와 위기관리체계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군통수권자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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