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은 정확히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해양학 공부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은 요즘은 새삼, 열길 물 속 알기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수십억 년 세월을 담아 온 넓고 깊은 바다 물 속을 속 좁은 인간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으리’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해양학을 하기 전에는 바닷가에 나가 찬란히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 ‘참 멋있다’라고 제법 낭만적인 생각을 하였으나, 해양학을 시작한 후에는 ‘저 바닷물 1 cc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하고 자문하는 멋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바닷물 1 cc안에는 수백 종에 속하는 수십, 수백만 마리의 플랑크톤들이 같이 살고 있음을 안 순간 내가 바다 속을 너무 몰랐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내 대학시절 일반생물학 시간에 배웠던 ‘같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생물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소수의 종들만 살아남는다’는 경쟁배타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가 하고 반문하였다. ‘어떻게 바닷물 1 cc에는 같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수백 종의 플랑크톤들이 같이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모든 종들이 회의를 한 후 자원을 공평하게 조금씩 나누어 가져 오순도순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긴 쪽은 자원을 많이, 진 쪽은 조금만 섭취하면서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답은 허친슨 박사의 논문에서 찾았다. 외부의 힘에 의하여 환경이 바뀌는 시간이 한 종이 힘을 발휘하여 모든 것을 독점할 수 있는 시간보다 짧아 많은 종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힘이 센 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기준이 주어지면 소림사 권법을 열심히 연마한 사람이 자원을 독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하루 뒤에는 붓글씨를 잘 쓰는 사람으로, 이틀 뒤에는 요리를 잘 하는 사람으로 바뀐다면 어느 누구도 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할 수 없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다. 사실 수백분의 일 mm 크기의 플랑크톤들 입장에서 보면 바다에는 하루에도 많은 환경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만일 환경이 오랫동안 안정화되어 있으면 한, 두 종이 우점하는 적조를 일으킬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두 번째 답은 각 종들이 매우 다양한 섭식 방법을 가지고 있어, 틈새시장을 개척하여 공존한다는 것이다. 플랑크톤 중 어떤 종들은 광합성을 하여 살아가는 식물성이고, 어떤 종들은 다른 생물들을 포식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성이며, 어떤 종들은 식물성과 동물성을 모두 갖는 혼합영양성이어서 자원이 겹치는 것을 최소화한 것이다.

우리 인간사회에도 많은 환경변화가 존재하지만 바다처럼 하루마다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이 꼭 있으므로 과감하게 도전해 볼 만하다. 환경 변화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때로는 경쟁을, 때로는 협력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 넓고 깊은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려면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바다쓰기(받아쓰기)’를 잘 했었어야 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한다. 바다로부터 지혜를 배우는 것도 바다쓰기(utilization of the ocean)의 하나가 아닐까?

정해진 자연대 교수ㆍ지구환경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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