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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인터뷰]탄자니아에 핀 한 청년의 사랑과 열정
  • 정혜경 기자
  • 승인 2011.02.27 01:11
  • 수정 2015.08.23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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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흐르고 그의 사진들을 담은 영상이 시작되자 소란했던 장내가 숙연해지고 영상 속에 떠오른 그의 미소에 시선이 집중됐다. 그가 탄자니아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4년. 지난해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지금 탄자니아에 잠들어 있다. 25일(금) 학위수여식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은 故이용준씨(건축학과•06)의 이야기다. ­­­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용준씨를 “다방면에서 재능이 넘쳤던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생전 이용준씨와 절친한 사이였던 류기현씨(국사학과•04)는 “용준이는 천재적 기질이 다분한 친구였다”며 “다양한 학문적 분야에 매우 열정적이었던 친구”로 그를 기억했다. 즉흥 연주가 가능할 정도로 피아노 연주에도 소질을 보였던 용준씨는 복수 전공이었던 동양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탄자니아에 가기 전 남겼던 논문으로 동양사학과 교수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용준씨의 논문을 지도한 박한제 교수(동양사학과)는 “논문을 중시하는 동양사학과 내에서도 순위를 다툴 정도로 학업적 성취가 뛰어났던 학생이었다”며 그의 불행에 유감을 표했다.

특히 용준씨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던 그의 관심사를 전공인 건축학에서 통합해냈다. 그가 특별히 따랐던 아이아크(iArc) 설계 사무실 유걸 대표는 “이 군은 지역의 토속적 건축 양식, 언어, 음악 등의 구조를 분석해 여러 가지를 아우르는 통합적 방식으로 건축을 시도했던 뛰어난 인재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신입생이었던 1학년 여름 방학, 대학 입학 후 들어갔던 선교 동아리에서 탄자니아를 처음 방문하게 됐다. 용준씨는 사회 기반 시설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탄자니아 사람들의 처지를 보고 종종 “억울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세 번이나 더 탄자니아를 방문했던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보태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보다 큰 웃음을 주고자 했다.

용준씨는 매번 적지 않은 자비를 들여 탄자니아를 방문했다. 그는 우물 파기, 태양광 발전판 설치, 나무 심기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동시에 전공인 건축학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킬리만자로산 가까이 위치한 보마(boma) 마을에서 주로 활동했던 용준씨는 현지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 고아원, 초등학교 등의 설계도를 작성했다. 작년 여름의 방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진학할 수 있는 중학교를 설계하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기도 했다. 실제 보마 마을에는 그의 설계 도면을 기반으로 한 초등학교, 유치원 등이 완공된 상태다. 

다소 내성적이었던 용준씨에게 탄자니아 봉사활동은 성격을 변화시키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본래 용준씨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신의 재능 계발에 몰두했던 것에는 ‘자기 자신’만으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룸메이트였던 윤현준씨(전기공학부•06)는 “용준이 형이 건축과 동양사학에 보였던 열정의 일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도 기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여름 자신이 설계한 보마 마을의 학교 건축 상황을 확인하러 갔던 이용준씨(건축학과 06)가 마사이족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 김현빈씨 제공)

 
 

 


그러나 탄자니아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한 후 용준씨의 삶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류기현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성이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용준이지만 여러 NGO들과 접촉하며 탄자니아에서 필요한 자금 요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그의 변화된 면모를 언급했다.

이처럼 그에게 탄자니아에서 보냈던 시간은 일반적 봉사활동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다. 류기현씨는 “탄자니아는 용준이에게 삶의 원초적 에너지가 되는 곳이었을 것”이라며 “그 곳에서 용준이가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이 아닐까 한다”고 회상했다. 탄자니아에서 마지막까지 이 씨와 동행했던 김현빈씨(생명과학부•10)는 “용준이 형은 평소에도 ‘봉사’라는 말 속에 포함된 시혜의식을 비판하곤 했다”며 “그는 탄자니아에 베풀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 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라고 덧붙였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있는 소박한 탄자니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용준씨는 자신을 표현해줄 수 있는 재능이나 능력이 아닌 본연의 모습으로서 관계맺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용준씨는 지난해 7월 킬리만자로 지역 보마 마을에 세울 학교 설계를 점검하기 위해 탄자니아로 출국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1주일 앞둔 어느 날 그는 해수욕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류기현씨는 ‘건축을 계속 배우면서 앞으로도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용준씨의 향후 진로를 회고했다. 그는 “그의 생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며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용준이의 존재가 가슴에 울림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명확하게 알고 진정으로 탄자니아와 하나가 됐던 용준씨. 인간관계에서의 거절을 두려워하고 그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던, 우리 주변에 으레 있을법한 ‘그’였던 용준씨가 “울림을 주는 친구”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탄자니아에 대한 그의 순수한 사랑과 꽃같이 아름다웠던 청춘을 바친 그의 열정에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는 절친한 이들의 목소리가 탄자니아 하늘 아래에 있는 용준씨에게 전해졌기를 바란다.

탄자니아에 자신의 열정과 사랑을 바친 청년. 그는 떠났지만 명예졸업장 한 장으로는 결코 다 기릴 수 없는 그의 삶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정혜경 기자  noma122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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