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작품 속의 파우스트는 악마와 내기를 걸고 연구실을 뛰쳐나와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사랑, 정치, 전쟁, 사업 등 온갖 활동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죄악을 저지르기도 한다. 길고 파란만장한 생애가 끝나자 천사들은 그의 영혼을 악마에게서 구해내 하늘나라로 안내한다.

작가는 안전하고 안락한 인생보다 위험하고 불안하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생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삶이라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확장하고 동시에 역사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겪고 때로는 본의 아닌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말이다. 절대권력의 지배에 항거하며 시민자유의 쟁취를 위해 투쟁하던 200년 전 유럽에서 『파우스트』는 무엇이 삶의 가치인가를 제시하며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절대권력은 사람들을 틀 속에 가둬놓고 그 속에서 안전하고 안락한 인생을 살도록 회유하고 때로는 강요한다. 사회 전체의 제도와 문화는 그 방향으로 작동한다. 제도교육도 예외가 아니어서 회유와 강요의 도구로 작동한다. 학력을 사회적 선발에 연계시키고 나아가 학벌사회를 조장함으로써 교육을 권력구조에 예속시킨다. 근대 국민교육제도는 많은 나라에서 그렇게 작동했다.

오늘날에는 자본이 권력을 지배하거나 결탁해 같은 방식으로 ‘안전하고 안락한 인생’을 회유하며 강요한다. 그리고 경쟁을 부추긴다. 안전하고 안락한 인생은 경쟁에서 이기는 소수에게 주어지는 것이 정의라는 주장과 함께. 그렇게 해서 기존의 지배구조와 분배구조를 지속시키려고 노력한다.

기득권 집단이 지배하는 교육은 비판적 사고, 자유로운 행위보다는 제도적 지식의 수용, 권위에 대한 순응을 강조하고 주입한다. 주어진 틀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교육하고 그런 학생을 유능한 모범생으로 평가한다. 기존 지식과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하는 행위는 되도록 억제한다.

이런 교육에서는 모든 시험에 정답이 정해져 있다. 정해진 정답과 다른 것은 모두 오답으로 판정된다. 답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고 각자가 다른 주장을 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학생들은 정답 맞추기 훈련에 몰두한다. 자유로운 사고, 새로운 것의 추구는 불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서울대 입학생 대다수는 이렇게 훈련된 사람들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시대별 인류의 활동 특성을 근대 이전에는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한 ‘노동’, 근대에는 산업사회유지를 위한 ‘작업’, 새로운 시대에는 민주적 시민사회 건설을 위한 ‘행위’로 규정했다. 특히 절대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주체적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기존의 틀 속에서 안전하고 안락한 인생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모험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열린 인생을 추구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외친다.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그것을 새롭게 쟁취하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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