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수억 원의 상금을 내걸고 진행되는 TV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2>, <위대한 탄생>, <신입사원>같은 프로그램은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검투사 시합을 닮았다. 젊은 지원자들이 오디션이라는 원형경기장에서 박 터지게 싸우고, 기성세대 관객들은 TV로 구경하며 응원 함성을 보내고, 연예인 심판들은 엄지손가락 올렸다 내렸다하며 합격 불합격을 결정짓는다.

로마시대 검투사 시합보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은 점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다. 한 명의 승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은 심사위원들의 갖은 독설을 받아내야 한다. ‘음악의 신’처럼 군림하는 심사위원 앞에서 왜 그들은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도 죄인처럼 서서 꾸중을 들어야 할까?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정한 사회의 뒷그림자를 본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의 시선으로 기성세대가 지금 ‘88만원 세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 리모콘을 들고 평화롭게 누워서 TV를 보는 기성세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거지같아?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 네가 찌질해서 그 모양 그 꼴인거지. 벗어나고 싶어? 그럼 발버둥 쳐! 우리도 다 그렇게 컸어’ 

이것은 흔히 말하는 ‘꼰대’들의 행태다. 그런데 너무나 태연히 이렇게들 말하고 있고 이는 버젓이 방송되고 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의 신화를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심지어 ‘88만원 세대’ 아이돌들도 각종 경쟁에 내몰린다. ‘아이돌 올림픽’ 등 각종 포맷의 프로그램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렇게 어느덧 경쟁은 이 세대의 숙명이 됐다.

요즘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그들이 대학시절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IMF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IMF 때 우리집이 혹은 친구의 부모님이 혹은 부모님의 친구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자란 세대가 다시 ‘88만원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그 절망감이 어떠할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싼 ‘등식주(등록금/식비/주거)’ 문제는 현실적인 경제감각까지 요구한다. 

이런 ‘거지같은 세상’을 물려준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나이 몇 살 더 먹은 핑계로 감히 조언을 한다면 대학을 ‘성장’이 아니라 ‘성숙’의 시기로 보내라는 것이다. ‘입시’를 ‘입사’로 바꿔서 고등학교 시절의 연장선상에서 대학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변태’를 거치지 않으면 나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대학에서 답을 구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대학은 확실한 답을 얻는 곳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구하는 곳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부른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인생의 수준을 결정한다. 목표를 이루고 못 이루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느냐가 바로 인생의 품격을 결정한다.

용기 있는 자만이 추억을 얻을 수 있다. 추억에 욕심을 부려라. 진짜 부자는 추억 부자다. 대학은 바로 그 추억부자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다.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 좋은 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 기억은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추억은 ‘리셋’이 불가능하다. 그 추억을 외면하고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것은 오히려 인생을 허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은 연말정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맨 나중에 보상을 받아야하나? 도중에 지치지 않으려면 제 때 중간정산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보상의 기억은 새로운 도전의 씨앗이 된다. 참지 말고 즐겨라.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잘 놀고 잘 쉴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인생의 품격을 갖출 수 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함부로 오늘을 담보 잡히지 마라. 나의 오늘이 곧 나의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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