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도적인 밀집형 축산 방식
구제역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생명의 존엄성 배려하는
축산방식 고민할 때

(법학부 석사과정)
겨우내 맹위를 떨치던 구제역의 기세가 점차 잦아들고 있는 모양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미 발생한 피해가 너무나 크다. 언론 보도를 살펴보니 살처분 된 가축이 300만 마리가 넘고 매몰지가 4,700여 곳에 이른다. 유제품을 비롯한 식료품 가격 상승과 침출수 유출로 인한 하천이나 지하수의 오염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구제역이 어느 정도 진정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지금,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과 같은 대참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먼저 이번 구제역의 원인이 된 바이러스가 어떠한 경로로 유입되었는지의 문제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으며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그러나 어떠한 경로로 바이러스가 유입되었건 간에 전례 없이 구제역을 크게 확산시킨 원인으로 상당히 설득력 있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좁은 축사에 많은 가축들을 밀어 넣고 사육하는 밀집형, 공장형 축산 방식이다.

밀집형 축산을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목하는 신문 기사들을 보며 몇 해 전 읽었던 『희망의 밥상』(제인 구달, 게리 매커보이, 게일 허드슨 지음)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식생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밀집형 축사에서 비인도적으로 사육되는 가축들의 고통을 알리고 이러한 축산 농가에서 가축 전염병이 더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 버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 책만 보더라도 밀집형 사육으로 인한 문제는 예견 가능한 일이었으며 또한 예견했어야 하는 일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미 예견된 문제조차 막아내지 못한 것은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 때문이다. 더 빨리 더 많은 가축을 키워 축산물을 공급하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은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그 욕망은 좁디좁은 우리에 가축을 몰아넣고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사육하는 축산형태로 귀결됐다. 이 과정에서 그 누구도 가축들 역시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비좁은 축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가축들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많은 가축들이 모여 있는 비좁은 우리에서 전염병은 더욱 빠르게 번졌을 것이다.

구제역이 발생한 후의 대응에 있어서도 생명의 존엄을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많은 소와 돼지를 마구잡이로 살처분해 되는대로 묻었으면서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죽어가는 동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많은 동물들이 살처분 되고 난 뒤였다. 우리 모두의 이기심과 경솔함으로 수많은 동물들이 잔인하게 상처 입은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의 생명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는 이 엄연한 사실을 망각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보통 뒤늦게 손 써봐야 소용없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미 소는 잃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생명을 존중하는 축산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빚어진 생명 경시 풍조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음을 명심하고 이제라도 생명을 존중하는 축산 방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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