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노 기술, 일상 생활을 파고들다
영화 속 최첨단 기술 실현 가능하게 하는 ‘나노재료공학’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등 무한한 가능성 가진 신나노소재

미국 국가과학재단(NSF) 보고서는 세계가 2001년부터 이미 나노기술(NT)시대로 돌입하였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에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할 정도로 나노기술은 의약, 국방, 에너지, 운송, 통신,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21세기 사회를 주도하는 과학기술이다. 『대학신문』에서는 앞으로 4회에 걸쳐 여러 분야에서 나노기술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나노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nanos’에서 유래한 말로 10억분의 1미터의 길이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1 나노미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혹은 설탕 분자의 길이에 해당한다. 나노는 일반인들에게는 단순히 ‘아주 작은 어떤 것’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이제 나노는 단순히 단위를 지칭하는 말을 넘어 새로운 기술을 칭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나노재료공학은 기존의 재료공학 분야에 나노기술을 접목시킨 것으로 머지않아 일상생활에 큰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존 앤더튼이 보던 전자종이로 된 신문, 그가 입고 있던 컴퓨터는 모두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과 같은 나노소재를 이용해 실현할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원자 6개로 이뤄진 육각형들이 서로 연결돼 관 모양을 이루고 있는 물질로 1991년 일본전기회사(NEC) 부설 연구소의 스미오 리지마 박사가 우연히 발견했다. 탄소나노튜브는 2억 개를 한 다발로 묶어야 머리카락 굵기가 될 정도로 두께가 얇지만 강도는 강철의 100배에 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 열전도율이 구리의 1천 배에 달하며 소재의 15%가 변형돼도 형태를 유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탄소나노튜브의 탁월한 강도를 이용해 지면과 지상 9만 2천2백km 상공에 떠 있는 우주정거장을 연결하는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나노재료공학의 발전으로 약 10년 뒤에는 버튼만 누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탄소나노튜브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상용화 작업은 국내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일(화)에는 박영우 교수 연구팀과 이상욱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개발한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신개념 메모리 소자 연구 결과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으며 탄소나노소재를 생산하는 (주)카본나노텍은 탄소나노튜브와 철을 결합시킨 KTX용 브레이크 패드를 개발해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탄소나노튜브는 나노소재의 ‘왕’으로 군림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임지순 교수(물리학과)는 “탄소나노튜브를 디스플레이 재료로 상용화하기에는 엔지니어링, 가격 등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나노 규모에서 나타나던 특성들이 튜브가 되면서 약해지거나 사라질 뿐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 소재가 손상을 입기도 쉽기 때문이다. 또 튜브를 감는 방향에 따라 도체 혹은 반도체가 되기 때문에 그 특성을 제어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과학자들은 탄소나노튜브의 아우뻘인 그래핀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핀은 지름 0.2나노미터의 원소 한 층으로 이뤄진,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이다. 그래핀은 탄소원자들이 벌집형태로 무수히 연결돼 단층을 이루고 있는 구조로, 그래핀이 겹겹이 쌓여 3차원을 이루면 흑연이, 김밥처럼 말면 탄소나노튜브가 된다. 맨체스터대 물리학부의 안드레 가임 교수팀은 흑연 결정에서 그래핀 한 층을 분리해내 200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래핀은 종래의 고전역학이 아닌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뛰어난 전기전도성을 자랑한다. 게다가 탄소나노튜브와 달리 금속성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어서 접거나 구겨도 전기전도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현식 교수(서강대 물리학과)는 “그래핀은 가공이 쉬워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 입는 컴퓨터 등 산업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고 말했다. 그래핀 연구는 이미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등장한 둘둘 마는 전자책, 구길 수 있는 터치스크린, 손목에 차는 컴퓨터와 같은 꿈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뿐 아니라 그래핀은 뛰어난 신축성과 투명도를 바탕으로 태양전지, 유기발광소자 등에도 이용될 수 있는 다양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처럼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이 부리는 ‘마술’들은 어느새 우리들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특히 국내의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 연구 분야는 한국인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예측이 있을 정도로 그 연구범위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김상욱 교수(KAIST 신소재공학과)는 “국내 나노기술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기술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라며 국내 나노재료공학의 밝은 미래를 전망했다. 현실의 우리가 영화 속 존 앤더튼처럼 살 수 있을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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