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철 문학평론가
슬픈 저녁


              제오르제 바코비아


음치인 그녀가 노랠 부른다
늦은 시간, 텅 빈 카페에서
힘겹게 부른다, 하지만
슬픔으로 가득한 채,
그녀의 주변엔 온통 폭풍이
이는 듯하다
마치 괴물과 같은 쳄발로의
소음처럼
음치인 그녀가 노랠 부른다.


음치인 그녀가 노랠 부른다
우린 하나의 슬픈 무리
구름과 같은 담배 연기 사이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생각하면서……
그러곤 길고 긴 사탄의 메아리
음치인 그녀가 노랠 부른다.
 
음치인 그녀가 노랠 부른다
그녀의 주변엔 온통 폭풍이
이는 듯하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탁자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우리들 뒤편, 이 텅 빈 홀에서
음치인 그녀가 노랠 부른다.


너무 슬퍼서 좋은 시가 있습니다. 제오르제 바코비아의 어떤 시들이 그렇습니다. 슬퍼서 좋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선 나부터가 납득하기 어렵지만, 슬퍼서 좋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선명한 느낌입니다.

  문지사판 바코비아 시선집의 날개에는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1881년 9월 4일 몰도바 지방의 작은 도시 바커우에서 태어나 이아쉬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서, 고등학교 보조 미술교사, 사무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 창작을 했다. (…) 1957년 5월 22일 아침 부인에게 “어-두-움이 밀려온다”라는 짧은 속삭임을 남기며 일생을 마감했다.” 죽음과 절망에 관한 시들을 써온 바코비아에 대한 인상 때문인지, 루마니아 동쪽의 작은 나라 몰도바도, 사서와 고등학교 보조 미술교사와 사무원이라는 직업도 공연히 서글퍼 보입니다. “어둠이 밀려온다”는 그의 마지막 말에는 가슴이 시려옵니다.

  「슬픈 저녁」은 바코비아의 첫 시집 �dc54납�dc55(1916)에 수록돼 있습니다. 제목처럼,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슬픔의 무게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만 하고 걷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힘겹습니다. 대지 아래서 잡아당기는 어두운 힘을 이기지 못하고 �dc54납�dc55의 시들은 관 속에 누워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바코비아는 말합니다.


잘 들으렴, 그대, 나의 연인아,
울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렴
들으렴, 심연으로부터 힘겹게
울려 퍼지는,
땅이 제게로 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 「멜랑콜리」 中

 


  “울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바코비아의 주문을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바코비아가 전하려는 말은, 울음과 두려움 속으로 도망치며 땅의 소리로부터 귀를 닫지 말라는 것, 땅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으며 울음과 두려움이 자신을 관통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을 두려움에 온전히 내맡기는 이 역설적인 상태를 바코비아의 시들은 보여줍니다.

  납 혹은 땅의 소리를 듣는 자들의 우울한 얼굴이 �dc54납�dc55에는 너무 많습니다. 「슬픈 저녁」도 그런 시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읽었습니다. 바코비아의 다른 많은 시들이 그런 것처럼 「슬픈 저녁」도 누군가의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장면들이 아닐까요. 누군가의 부음을 들은 날 저녁, 혹은 그/녀를 땅에 묻고 돌아온 날 저녁,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단골 카페에 모였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뭐라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슬픔에 젖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그녀가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그녀가 부르는 것은 노래가 아니기도 합니다. 리듬과 멜로디는 무자비한 시간 위에 규칙성을 부여하며 잔혹한 자연을 인간화하는 것이지만, 음치인 그녀는 괴물 같은 쳄발로의 소음을 내며 리듬과 멜로디를 지웁니다. 리듬도 멜로디도 인간화된 시간도 없는 그녀의 노래는 노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자비한 시간과 잔혹한 자연으로 흘러넘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끓어오르는, 통제할 수 없는 우리의 감정이 아마도 그런 것이겠지요.

  “음치인 그녀가 노랠 부른다”. 매 연의 시작과 끝에서 모두 6번 반복되는 이 단순한 구절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매 연 그녀의 ‘노래 아닌 노래’는 폭풍처럼 일렁이는 슬픔의 무리를 만듭니다. 아무도 집에 갈 수 없지요. 다만 탁자에 이마를 대고 울 뿐. 카페에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가 죽지 않았다면 함께 누렸을 삶에 대해서? 그가 죽기 전 함께 했던 추억들에 대해서? 아니면 죽은 그가 편히 쉬고 있을 유계에 대해서?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에 대한 생각은 담배연기처럼 흩어집니다. 담배연기가 흩어진 공허한 자리에 납의 소리가, 땅의 소리가, 결국 모든 것을 끝장 내버리는 사탄의 메아리가 울려퍼집니다.

  사탄의 메아리에는 오직 그녀의 ‘노래 아닌 노래’만이 응답할 수 있고 우리는 누구도 집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지 위에 새긴 우리의 안식처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땅의 소리는 대지 위에 세운 모든 인간화하는 것들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슬픈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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