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

지난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에 규모 9.0의 대지진과 함께 쓰나미가 덮치는 대재난이 발생했다. 대지진과 쓰나미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인데 일본에게 닥친 재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원자력발전소의 연쇄폭발이 방사능 유출로 이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본 열도는 꾸준히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이번 재난에 대한 공포는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재난에 대한 보도 기사를 보고 난 후 ‘안타깝다’와 같은 단어조차도 말할 수 없었다. ‘안타깝다’, ‘불쌍하다’는 단어로는 내가 대재난 보도 기사를 보고 들었을 때 느낀 감정 모두를 담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실례가 되는 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재난에 대한 뉴스나 기사, 사진을 볼 때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일본의 이번 재난에 대해 한국인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침몰’을 대지진 기사 표제로 삼아 빈축을 샀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서도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이 이런 일을 당해 정말 고소하다”, “일본의 이번 대지진은 지난 역사에 대해 죗값을 치루는 것이다”는 등의 말을 인터넷에 게재해 다른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발언과 행동들은 아픔을 당한 일본인들에게 육체적인 고통보다 큰 정신적인 충격을 줬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발언들은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갈등과 적대의식의 산물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특히 조선시대 임진왜란때부터 일본에 대해 적대감을 쌓아오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식민지의 모진 고통을 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독도 영유권, 역사 왜곡 등의 문제로 끊임없이 갈등관계를 겪으면서 적대감은 우리의 뇌리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적대 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일본의 이번 재난에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우리 위주로, 우리의 상황만 바라보도록 해서 우리나라의 시야를 좁혀버렸다. 역사의 아픔과 현실의 아픔을 분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역사 속의 민족주의 의식, 적대 의식, 아픔을 재난으로 인해 사람으로서 겪는 아픔과 구분할 줄 알아야 함에도 우리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 묻혀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가 겪은 아픔을 대재난, 자연의 힘 앞에서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인간’으로서의 아픔과 혼동하고 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몰상식한 행동으로 아픔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위안부 할머니들도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하는 집회 현장에서 이번 대지진으로 아비규환에 빠진 일본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도 이번 재난 앞에서 조금은 숙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 속에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었고, 수많은 일상이 있었고 수많은 추억이 있었다. 적대의식과 지난 역사 속에서의 피해의식에 대한 대리보상 심리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접어두고 생명과 자신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애도의 말을 건네 보는 건 어떨까.

민족의식, 적대의식이 이런 대재난을 바라보는 시각에까지 반영될 필요는 없다.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인간’의 고통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애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우리를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성숙한 국가의식을 보여주는 우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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