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로 가는 정치 전략
복지국가로 가는 정치 전략
  • 대학신문
  • 승인 2011.03.20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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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유럽의 정치는 그야말로 격변기였다. 대공황과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나치즘과 복지국가가 동시에 등장했다. 또 이 시기는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민주주의 도입의 초창기였다. 그렇기에 정치이념의 각축도 치열했다. 자유주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민족사회주의(=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가 상호 경쟁하던 정치이념이었다. 『정치가 우선한다』(셰리 버먼)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도입의 ‘원형기’ 시절에 있었던 각 정치사상의 원형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매우 박진감 있고 드라마틱하다.

반면 『한국의 48년 체제』(박찬표)는 한국 정치이념 및 한국정치 체제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 책은 1945년 해방직후부터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돼 분단이 기정사실화된 1948년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보수적 한국 정치체제의 기원과 구조를 밝히며, 동시에 한국의 사민주의적 정치실험이었던 여운형과 조봉암의 도전과 좌절을 재조명한다.

격변의 20세기 유럽 정치 - ‘승리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우선한다』라는 책의 이론적 백미(白眉)는 자유주의, 정통마르크스주의, 민족사회주의(=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사민주의의 상호작용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상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의 핵심 국가들을 포괄한다.

셰리 버먼 지음ㅣ김유진 옮김ㅣ후마니타스


20세기 초반, 민주주의 도입 초창기의 혼란과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인해 공동체는 파괴되고 개인은 원자화됐다. 이 당시 지배적 이념은 자유주의였고, 대항이념으로 등장한 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였다. 서로 대립하지만 이들은 모두 ‘경제중심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유주의는 자유방임적 최소국가론을,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둘 다 정치적 무능력을 드러내 대안적 흐름이 등장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수정주의적’ 흐름이다. 수정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치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정치중심론’이라는 점이다. 혁명적 수정주의였던 민족사회주의와 민주적 수정주의였던 사민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민족사회주의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집권,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귀결된다. 사민주의는 대공황에 맞서 적극적인 사회경제적 개입을 통해 복지국가의 흐름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왜 발생했을까? 이들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사민주의의 경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포용한’ 사회주의 이념이었다. 반면 민족사회주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배제하는’ 정치 이념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20세기 사민주의야말로 자유주의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절충’이 아니라양자 모두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격변과 해방 직후 한국 정치 - ‘좌절된’ 사회민주주의

『한국의 48년 체제』의 주요 내용은 한국정치는 왜 진보적 대안이 봉쇄된 보수양당 체제가 됐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은 그 기원을 1945년~1948년의 정치 과정에서 찾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48년 체제의 핵심 특징은 “반공체제 제약하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였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의 학문적 독창성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48년 체제를 해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분단고착과 냉전 반공주의적 정치구조에 대한 진보진영의 주류적 해석은 미국과 소련에 원인을 돌리는 ‘외세론’이었다. 80년대 한국 운동권의 다수파를 차지했던 주체사상에 기반한 민족해방파(NL)의 성장은 이러한 요인에 근거했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反외세 민족주의’가 대안적 이념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찬탁/반탁 논쟁에서 드러나듯 민족주의는 오히려 ‘과잉’이었다. 부족한 것은 ‘민주주의’였다.

박찬표 지음ㅣ후마니타스

저자는 좌파였던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우파였던 이승만 두 상대방의 절멸(絶滅)을 꾀했던 ‘기지론자’였다고 비판한다. 본래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경쟁하는 상대 정치세력의 존재를 승인하고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는 다원주의다. 그런데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이승만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반면 해방 직후 사민주의적 흐름의 대표 정치인이었던 여운형과 조봉암이은 중도우파였던 안재홍, 김규식 등과 좌우 합작을 추진했다. 그래서 양 극단의 기지론자들에 맞서 민주적 통일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

여운형과 조봉암의 실험은 매우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고,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지만 결국은 실패하게 된다. 여운형은 암살을 당하고 조봉암은 이후 이승만에 의해서 진보당 사건을 통해 법살(法殺) 당한다. 그리고 기지론자였던 김일성과 박헌영에 의해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이승만에 의해서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모두 한국전쟁기간 대량 숙청을 당하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은 분단과 냉전적 반공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전략 - 사민주의에 기반을 둔 조봉암 노선의 ‘현대적’ 재현

조봉암이 걸었던 정치행적과 성과는 심지어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사회주의 운동에 관여했었다. 그러나 해방 직후 신문에 ‘전향서’를 공개 발표하며 박헌영 노선과 결별한다. 소련을 추종하던 기지론적 공산주의 세력과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그리고 중도우파와 좌우합작 운동을 추진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결국 1948년 남과 북은 별도의 정부가 수립된다. 놀라운 것은 여기부터다. 좌파와 중도좌파, 그리고 심지어 김구와 조소앙 등의 중도우파 계열도 제1대 국회(=제헌의회)선거에 불참한다. 분단 정부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봉암은 다르게 생각했다. 분단이 기정사실화된 상태였기에 일단 적극적으로 제헌의회에 참여함으로써 ‘정치’를 통해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봉암의 현실주의적 정치관이 빛나는 대목이다. 분단을 인정하고 분단을 극복하자는 정치노선이었다. 바로 ‘정치’를 통해.


『정치가 우선한다』와『한국의 48년 체제』는 유럽과 한국이라는 다른 시공간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치’의 적극성을 강조하며 사민주의적 관점에 근거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전략이 수립된다면, 그 성패는 사민주의와 조봉암 노선의 현대적 재현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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