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과
한학기가 지난 올 1월에도 어김없이 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새학기 강의를 시작할 때에 성적에 관한 문의는 받지 않겠다고 공언을 해도 몇 사람은 메일을 보내온다.

이번에 받은 메일이다. “학점이 나오고 계속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메일을 쓰는데요. ··· 다름이 아니라 성적을 C로 내려주셨으면 해서요. 너무 늦은 것같아 메일 보내볼지 말지 고민을 했는데요, 혹시나 해서 보내봅니다. 성적변경이 더 이상 안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부탁드립니다.”

또 다른 학생이 보내온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학점 B-를 받았는데 학점에 만족도 못하겠고 앞으로 학점 관리도 걱정이 돼 재수강을 하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본래 주신 학점 B-를 재수강 가능 학점으로 조정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이 두 학생을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캠퍼스 전체 분위기가 그렇다. 두 학생은 재수강을 하기 위해서 성적을 내려달라는데, 옛날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심지어 지난해 1월에는 다수의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학점을 흥정한 일도 벌어졌다. “졸업까지 15학점 정도가 남은 상황인데 제가 이번에 행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올해 시보임용을 바로 받으려고 하는데 그럼 연수원을 3월부터 다녀야 되서 1학기에 사실상 학교를 다닐 수 없습니다. 중간, 기말고사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핵심교양 역사와 철학파트를 다음 학기에 꼭 들어야 졸업이 되는데 제가 교수님 수업을 등록하고 일체의 시험이나 출석 등 수업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떤 학점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C정도 주실 수 있는지 F가 불가피한지 알고 싶습니다.”

올해로 서울대에 근무한지 23년째가 된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학점 인플레가 일어났다. 그것도 모르고 옛날식대로 A 20%, B 30%, C 40%, D 10% 비율로 주었더니 학점이 짜다고 소문이 난 걸 나중에 알았다. 지금은 A와 B를 합쳐서 70%, C 20%, D 10%를 준다. 극단적으로 A를 70%까지 줄 수 있고, 전공과목은 이런 제한도 없다. 물론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외국에 유학갈 때나 다른 대학 학생과 비교할 때를 생각해서 좀 더 올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학점 기준이 너무 풀어져 있다.

게다가 재수강을 해서 다시 학점을 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재수강을 하면 원래 학점도 성적표에 기재되어 있는데, 지금은 말끔히 세탁돼버린다. 그러니 B학점도 불만이어서 A학점을 따려고 C로 내려달란다. B학점은 재수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는 꼭 A+를 따야한다면서 다른 A학점에도 불만을 표하는 학생도 있다. 이게 우리 대학의 실상이다.

한 술 더 떠서 학생회장 선거 때에 학점포기제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있다. 다른 대학에서 하는데 우리만 불리하다는 것이다. 졸업 기준보다 학점을 더 많이 따서 하위 학점은 말소해버리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강좌를 더 들으니 등록금 수입이 늘 것이요 학생들은 좋은 학점만 남겨서 평점을 끌어올릴 수 있으니, 서로가 남는 장사이다.

그러나 이것이 대학에서 할 일인가? 기업에서는 왜 대학이 학점 사기를 치느냐는 말이 나온다. 얼마 안 돼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을 것이 뻔하다. 취업이 되지 않으니 학점 관리를 하는 심정은 이해되지만 학생은 학점 관리가 아니라 학력 관리를 해야 한다. 교수들도 연구 실적에 매달리다 보니 대학 전체가 교육의 방향타를 잃어버린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대학부터 학점의 성형 수술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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