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앞에 말한 몇 가지 현상들은 전부 뒤집어 볼 수 있는 것들이고 뒤집어 봐야 오히려 진상이 나타나는 것들이다. 실제 취업 전선에서 인문학 전공자들은 여전히, 혹은 갈수록 더 소외되고 있고 기초학문 보호 취지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의 법인화는 인문학의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훨씬 더 크다. 인문학 분야의 학문 후속 세대가 전임교수가 되는 비율은 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일종의 알리바이인 것이 아니겠는가. 보호니 지원이니 하는 말 자체가 그 대상을 보호받고 지원받지 않으면 위축 소멸될 운명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일 수 있으며 그 보호니 지원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대상을 위축 소멸될 운명으로 만들어놓은 뒤에 일종의 보상으로서 부여해주는 것일 수 있다.
특히 문제인 것은 앞에 말한 몇 가지 현상들 중 두 번째 것, 즉 경영,행정 등 분야의 중간간부에서부터 최고지도자에 이르기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교육과정에서 인문학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다. 이 인기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지도층이 인문학에서 어떤 유용성을 발견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문제는 그 유용성이란 과연 어떤 유용성인가 하는 데 있다.
돌이켜보면 인문학에는 본래부터 양면성이 있었다. 약간의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써야겠다. 시민사회 형성 시기에 인문학은 봉건적 구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인 신질서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전자로 보면 체제에 대한 비판성이 부각되고 후자로 보면 체제와의 협력성이 부각된다. 이 경우 비판의 대상인 체제와 협력의 대상인 체제가 상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중국의 경우를 보면 공자님께서 제후들을 상대로 유세를, 즉 일종의 인문학 교육을 하셨을 때 그것은 그 제후의 기왕의 통치를 비판하고 그 통치를 새롭게 개선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이 경우 비판과 협력의 대상이 동일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예컨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은 시민사회 형성기의 인문학보다는 공자 시대의 인문학에 가깝다.
다시 물어보자.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지도층이 인문학에서 유용성을 발견했다면 그 유용성은 어떤 유용성인가. 비판성의 그것인가, 협력성의 그것인가. 공자 시대의 제후들은 비판성의 그것을 거부하고 협력성의 그것만을 요구했다. 공자께서 제후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을 포기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의 인문학은 과연 어떤 처지, 어떤 입장에 있는 것일까. 양면성이 존재의 조건이라는 것과 그 중 어느 한 면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것 사이에는 심연과도 같은 거리가 존재한다. 더구나 그 선택이 협력성의 배타적 선택일 때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인문학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명료한 인식을 아프게 가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