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할인 경쟁, 왜곡된 베스트셀러 낳는 도서정가제…일부 대형 서점의 상업주의 행태도 문제

지난달 10일 출판 관련 15개 단체 17명이 모 인터넷 서점을 대상으로 ‘도서정가제 관련 위법행위금지’를 청구한 민사소송의 제1차 재판이 열렸다. 지난해 9월에도 도서정가제 법령에 대한 헌법 소원 심판이 청구되는 등 2007년 도서정가제가 제정된 이래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 이어져왔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된 지 18개월 이내인 신간(新刊)은 직접 가격할인과 마일리지 등 경품을 포함한 할인율을 정가의 최대 19%로 규정하고 있으나 구간(舊刊)에 대한 할인 제한은 따로 명시된 바 없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단가로 도서를 구비할 수 있는 대형 온라인 서점과 유통 업체가 구간 도서에 정가의 50%에 육박하는 과도한 할인율을 적용해 판매하는 등 출판계 지형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도서 출판 민음사 장은수 대표는 “그동안 도서정가제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도서할인제’로 이용돼 온 측면이 있다”며 할인 폭이 큰 구간 도서 위주로 찍어내는 기형적 출판 경향을 비판했다. 이어 그는 “도서정가제는 책 문화에 대한 다양성을 보전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 높은 구간만 출판하는 행태를 막음으로써, 신구간 도서가 고루 출간될 수 있게 하는 도서정가제의 본 목적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출판인회의가 실시한 주요 출판사의 출간 현황 분석에 따르면 4년 사이 신간 도서 판매가 150만부가량 줄었고 신간 대 구간 매출 비율 또한 10년 전과 비교해 6대 4에서 4대 6으로 역전됐다. 장 대표는 “이러한 출간 형태는 출판사들이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신간을 펴내는 ‘모험’에 대한 유인을 잃게 만든다”며 우려를 표했다.

구간 서적의 할인 폭 상한을 규정하지 않은 이러한 상황이 서점들과 출판사들의 ‘출혈 경쟁’을 야기해 출판계 전반의 공멸을 초래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지난달 주요 출판사들과 서점들이 구간 도서에 대한 할인율을 최고 30%로 한정하는 ‘구간 도서 할인율 제한 협약’에 합의했다. 이는 그간 대형 출판 유통업체와 온라인 서점이 구간 도서에 적용한 과도한 할인율 때문에 벌어졌던 가격 경쟁을 자정하려는 시도로 평가됐다. 하지만 합의를 어긴 업체에 대한 제재 수단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과 구간 위주로 편중될 수 있는 출판 지형을 시정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최근 이 협약은 출판업계의 담합이 아니냐는 공정위의 우려로 인해 사실상 무산됐다.

한편 현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출판문화 쇠퇴 논란은 근본적으로 할인 판매를 통한 매출 올리기에 급급했던 대형 온라인 서점 업체의 상업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대형 유통업체나 다름없는 온라인 서점들이 양질의 도서 공급을 통한 출판문화의 신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많이 팔고보자’는 식의 판매·홍보가 출판계 전반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할인 판매를 조장하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 방’에 사활을 거는 출판사가 늘어나 상품성이 보장된 작품에만 관심이 집중돼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교양서·학술서적은 거의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업주의가 도서정가제의 허점을 악용하는 대표적 사례로 바로 편법을 통한 ‘베스트셀러 만들기’를 들 수 있다. 베스트셀러 대부분이 구간이라는 것은 구간에 대한 무제한적 할인이 도서 매출과 책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스트셀러의 선정 자체가 작위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소장은 “적어도 상위권 베스트셀러의 상당수는 사재기를 했다는 데 업계 내부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분위기”라며 “특정 도서에 대한 홍보와 할인이 매출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고 전했다. 일례로 그는 “현재 세계적 스테디셀러로 자리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명성도 당시 자사의 홍보를 위한 ‘한 방’을 만들 요량으로 물량 공세를 쏟은 아마존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상업성에 집착한 일부 출판 업계의 행태와 도서정가제의 불완전함은 출판 문화의 건전성과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중소형 서점상의 몰락과 출판계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현 도서정가제가 출판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진정한 ‘정가제’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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