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 김희경 작가의 그림책 「마음의 집」이 우리나라 최초로 아동문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가치상 논픽션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라가치상은 아동문학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함께 평가기준으로 삼는 상으로 최근 수년째 그림책에 수상해오고 있다. 오늘날, 그림책 속의 그림이 단지 글의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 수준을 넘어 글과 엮여가며 그림책은 하나의 고유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활발히 열리는 그림책 원화 전시회나 CJ그림책축제 역시 이 경향을 대변한다. 글과 그림이 엮인 그림책의 특징과 그를 기반으로 그림책의 저변을 넓혀가려는 움직임을 살펴보자.


때론 함께, 때론 달리 그림과 글의 줄다리기
미국의 그림책 작가 바버러 쿠니는 “그림책은 진주목걸이”라고 말한다. 그림이 진주라면 글은 진주를 하나로 엮는 끈이다. 진주를 줄에 꿰 진주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글과 그림도 한데 엮였을 때 더 아름다워진다는 의미다. 그림이 이야기 속 찰나의 순간을 찍어내 직접적인 시각적 충격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면 글은 그림이 담을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을 들려준다. 글과 그림은 끝없이 힘의 경합을 벌인다. 때로는 둘 중 한쪽이 생략되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보완하기도 하고 가끔은 대립각을 세우며 각각 말하는 의미 외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삽화: 김태욱 기자, 한혜영 기자

 

도박을 통해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데이비드 위즈너의 『주사위 던지기』(①)는 글과 그림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작품이다. 주인공 조는 정체모를 ‘큰 노름꾼’과 생명을 건 대결을 펼치며 파멸의 길로 치닫는다. 이야기의 끝에서 큰 노름꾼의 “손가락뼈들이 부푼 밀가루 반죽처럼 공중에 흩어”지는데 그림을 소홀히 하고 글만 따라 읽은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어리둥절하게 될 것이다. 책장을 앞으로 넘겨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자. 조가 도박장에 갈 지 고민하거나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빵 덩어리가 크게 클로즈업돼 있다. ‘큰 노름꾼’은 아내가 도박에 빠진 남편을 혼내주려고 빵으로 만든 인물이었던 것이다. 글과 그림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연관관계가 흥미롭다.

글과 그림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는 후쿠다 토시오의 『길을 찾아서』(②)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인생이란 무수히 많은 갈래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독자들은 유독 잔선이 많은 책 속의 그림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복잡한 그림에 조금만 집중해보면 금세 그림들이 모두 미로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수도꼭지로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과 같은 일상적인 현상에 미로를 겹쳐놓음으로써 작가는 겉으로 평범해보이는 생활 속의 복잡다단한 의미를 찾아낸다.

주인공 ‘나’가 막스 아저씨 화실의 그림들을 감상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담은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은 ‘나’와 함께 독자를 텅 빈 화실로 밀어 넣는다. 화첩을 넘기듯 책장을 넘기다 눈 내리는 겨울날을 담은 그림을 보면 길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커다란 동물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그림 감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독자에게 작가는 “캐나다에서 본 눈코끼리들. 정말 눈 깜짝할 동안만 보였지”란 짤막한 설명을 전한다. 일전에 막스 아저씨가 해준 눈코끼리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나’의 고백도 이어진다. 그림을 보며 주인공과 함께 화실을 걸은 독자는 글에 드러난 ‘나’의 생각과 막스 아저씨의 마음에 한층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한편 쉘 실버스타인의 『폴링 업(Falling Up)』(③)은 위로 떨어진다는 제목의 아이러니처럼 글과 그림이 각각 상반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글과 그림의 간극은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 낸다. 좌우를 살펴도 안전하니 길을 건너도 되겠다는 글과는 달리 그림은 주인공을 향해 위에서 커다란 상자가 떨어지는 위기일발의 상황을 묘사했다. 몇장을 넘기면 보물 상자를 찾은 한 남자가 이 보물을 혼자서 어떻게 쓸 지를 고민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림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물이 들었으리라 생각한 상자에 진하게 표시된 독극물 마크를 찾을 수 있다. 글과 그림이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우리 삶 도처에 깔린 인생의 아이러니를 연상하게 된다.

그림책에 녹아든 다양한 장르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꿈꾸는 윌리』(④)의 표지가 눈에 익을 듯하다. 윌리가 잠든 소파가 하늘 위에 떠 있다. 이는 마그리트의 작품 「피렌체의 성」과 흡사하다. 소설이 기존의 소설, 전승되는 신화나 민담을 패러디하듯 그림책도 명화, 민화 등의 다른 장르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이 때 끌어들인 여러 장르는 글과 그림이 하나된 그림책만의 언어와 만나 새롭게 다가온다.

앤서니 브라운은 『꿈꾸는 윌리』 외에도 자신의 그림책에 여러 명화를 차용했다. 그림책 『거울 속으로』(⑤)에서 그는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패러디한다. 브라운의 그림 속에는 커다란 개가 한 성인 남자를 끌고 간다. 성인 남자의 입에는 파이프가 물려있다. 사물과 그림, 텍스트 사이의 모순을 작품으로 보인 마그리트처럼 브라운은 개가 어른을 끌고 가는 그림과 ‘어른이 권위 있다’는 말 사이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권위주의에 젖은 어른의 모습을 풍자한다. 초현실주의 작품에 드러나는 블랙 유머를 현실 상황에 대한 풍자로 새롭게 창조해낸 경우다.

이호백의 『선비의 방에 놀러가요』는 우리 민화에 이야기를 붙여 만든 그림책이다. 작가는 경사스러운 일만을 모아 병풍 위에 그린 「평생도」에서 선비의 삶을 읽어내고 그 위에 이야기 살을 붙였다. 이야기로 만들어진 시간의 흐름은 선비의 서가가 점점 책으로 채워지는 것과 같이 박물관에서라면 놓치기 십상인 민화의 세심한 부분까지 부각시킨다. 민화에서는 작게 그려진 책거리 그림, 공작 깃털 등의 세밀한 부분들도 이야기에서 모두 짚고 넘어가 그림책 속 민화에서는 당시 문화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한편 그림책의 글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짧고 간결한 문체는 시와 그림책의 결합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그림책 『준치가시』는 준치가 가시투성이가 된 과정에 얽힌 옛 이야기들을 정리해 시인 백석이 쓴 여러 단편 시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흐르는 물을 타고 헤엄치는 준치의 움직임처럼 계속 연결되는 김세현 화가의 그림은 분절된 시 한편 한편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백석의 시는 운문의 정형적인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림과 만나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난다.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은 시와 그림책의 결합뿐 아니라 그림과 글을 통한 새로운 패러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작품은 당나라 때 문인 유종원이 쓴 칠언고시 「고기 잡는 노인」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시의 전체적인 구성과 표현은 원작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노인 행동의 변화와 그림을 통해 작가는 원작과 전혀 다른 새로운 주제를 제시한다. 원작이 유유히 고기를 잡는 노인을 통해 은둔생활에 대한 동경을 전달한다면 슐레비츠는 캠핑하는 노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새벽의 빛을 본 느낌을 전한다. 새벽의 순간순간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빛의 변화를 그림을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작가는 새로운 주제에 한뼘 더 쉽게 다가선다. 이렇듯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유기적인 관계를 십분 활용해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며 그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