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실적을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초과이익공유제’가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대·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한 대안으로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시한 후 보수언론과 기업은 이를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황당한 논리라며 연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수혜대상인 중소기업들도 초과이익공유제를 환영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불공정’한 한국 시장에서 대기업이 선심 쓰듯 이익을 나눈다고 해서 중소기업의 사정이 나아질 리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학신문』은 ‘공정사회’의 화려한 조명 뒤에 감춰진 한국사회 불공정 거래의 현실을 돌아봤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덫에 걸린 가맹점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신조어가 보여주듯 한국 사회에서는 한창 나이에 은퇴를 강요당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이 때 은퇴자 대부분은 생계유지를 위해 자영업 경험이 없어도 쉽게 창업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를 선택한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국내 프랜차이즈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08년 77조원, 2009년 84조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관련 종사자도 15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업종에 뛰어든 이들이 만나는 것은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의 부당한 요구와 횡포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가맹점으로부터 부당하게 이윤을 얻는 대표적인 방식은 인테리어 비용과 광고비 전가다. 지난해 봄, 관악구 서림동에서 A치킨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을 운영하다 개인 치킨집으로 전환한 유모씨(29)는 “가맹본사가 2~3년은 더 해도 문제없을 멀쩡한 디자인을 교체하라고 강요하고 광고비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계속 요구했다”며 “브랜드 간판을 내리고 나니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10년째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B씨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5년마다 하는 ‘점포 환경개선’ 공사의 비용 부담은 전부 B씨의 몫이다. 게다가 가맹본사는 모든 인테리어 계약과 장비 구입을 본사 또는 본사가 지정하는 업체를 통해서만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B씨는 “가맹점이 본사에 대항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아예 제품 공급이 중단돼 가맹점주들은 입도 뻥긋하기 어렵다”며 “지난해 대형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의 불공정 약관이 공정위에 적발된 적 있지만 그 이후로도 변한 게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가맹점은 이런 불합리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장사의 기본이 되는 영업 지역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본사가 공격적으로 가맹점 수를 늘려가면서 기존 가맹점의 상권이 침해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가맹계약서에는 영업 지역을 보장해준다는 조항이 없기 일쑤고 있더라도 ‘인구 몇명당 1개’ 식으로 애매하게 설정돼있다. 이 때문에 가맹점주들은 바로 길 건너편에 같은 브랜드의 가맹점이 들어와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B씨는 “본사가 초기 계약 당시 약속했던 상권을 1~2년 주기로 재계약을 하면서 계속 쪼개고 있다”며 “이를 거부하면 아예 계약을 해지해버려 울며 겨자 먹기로 불리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맹점들은 본사로부터 불공정 행위를 당해도 호소할 방법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가맹본사와 가맹점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가맹점주는 공정거래조정원의 ‘가맹사업거래분쟁조정협의회(조정협의회)’에 조정신청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조정’의 역할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부장은 “조정협의회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강제성이 없고 제대로 이행됐는지 감시하는 절차도 없다”며 “조정을 다시 신청할 수 있다고 해도 상대적 약자인 가맹점주는 계약 해지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통큰’ 마트에 쥐어 짜이는 납품업자들

‘통큰치킨’, ‘이마트 피자’ 등으로 대표되는 대형유통업체의 가격 경쟁은 최근 더욱 뜨거워지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 파괴의 이면에는 저가 경쟁의 부담을 떠안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납품 공급자들의 한숨이 녹아 있다.

‘한몫 잡는 날’, ‘가격혁명’ 등 요란한 대형마트 광고지에는 항상 농산물 품목이 포함돼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농산물 기획세일은 제품 공급자인 농민과 상인들의 희생에서 나온 것이다. 농민이나 상인은 일단 대형유통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나면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농산물을 일정기간 납품할 것을 요구받을 때도 손해를 감수하고 물량을 넘겨줘야 한다. 세일기간이 아닐 때도 끊임없이 납품 단가를 인하하라는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에 가격협상력이 없는 상인들은 마진을 거의 남기지 못한다. 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 나용원 국장은 “대형 할인점에 납품하면 이익이 늘 것이라고 기대했던 공급자들은 일단 대형마트와 거래하고 나면 ‘다시는 못할 짓’이라고 한다”며 “대기업이 요구하는 안전성, 신선도 등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빚을 내서 시설 투자를 한 농산물 공급자들은 납품을 중단하면 길거리로 나앉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납품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단가 인하 압력은 이마트 ‘베스트’, 홈플러스 ‘알뜰상품’, 롯데마트 ‘와이즐렉’ 등 대형유통업체의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주로 1~2개 품목의 유통에 의존하는 중소기업 납품업체는 이러한 저가 PB상품 제작을 요구받으면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생산공정을 PB상품의 새로운 기준에 맞추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납품 단가는 오히려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원종문 교수(남서울대 국제경영학부)는 “PB상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판로를 확대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원가 절감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며 “장기적으로는 PB제품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자생력이 떨어져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달 9일 공정위 김동수 위원장은 ‘대규모 소매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기보다 있는 법이 잘 적용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승창 교수(한국항공대 경영학과)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성과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거래행위에 대한 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며 “갑을관계인 대형유통업체와 납품업체 사이에 문서계약을 의무화하고 이에 따라 거래행위가 공정하게 행해지는지 감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골리앗 대기업에 짓눌리는 중소기업

‘사상최대 연간 실적’. 지난해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유례없는 호황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연간 17조, 3조라는 화려한 영업이익 기록을 세우는 동안 중소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분조차 보상받지 못한 채 사업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은 ‘떠오르는 유망기업’ 등으로 언론에 소개되는 것을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초과이윤을 내는 낌새가 보이면 즉각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단가 인하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한국자동차산업 불공정 하도급관계의 실태와 정책대안’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공개입찰에 참여할 때 견적서에 미리 단가 인하 계획을 제출해야 하고 낙찰이 된 다음에도 단가를 재협상하는 과정을 거친다. 더욱이 대기업이 비정기적으로 업체를 방문할 때 하청업체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추가적으로 단가 인하 압박을 넣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김철식 박사(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현대차같은 대기업은 거의 시장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은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부품업체들 사이의 경쟁 강화, 글로벌 소싱 등으로 인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대기업의 기술 빼가기 역시 중소기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지난 2009년 공정위가 실시한 하도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22.1%가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긴 경험이 있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및 유용에 대해 배상받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서오텔레콤이 응급상황 시 휴대폰으로 긴급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을 LG텔레콤에 빼앗긴 후 4년동안 특허분쟁소송에 휘말린 사건은 대표적인 기술탈취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7년 서오텔레콤이 승소하면서 특허권을 인정받게 됐지만 손해배상소송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은 “대법원 판결을 통해 특허침해 사실이 명확하다고 확인됐는데도 LG는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법적으로 하라며 버티고 있다”며 “대기업이 이렇게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오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생존이 위험해져 거의 대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1일 통과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업종별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부여하고 원청업체의 기술탈취에 대해 3배로 보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새로운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은 “협동조합은 조정 신청권만 가질 뿐 협상에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협상력이 떨어지는 개별 중소기업은 결과적으로 원청업체의 요구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역시 적용 영역이 기술탈취 부분으로만 제한돼 있다”며 “일반적인 법 위반에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확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공정한 시장’을 보장하기 위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전속 고발권을 쥐고 있는 공정위가 지난 20년간 이를 거의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제소된 대기업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는커녕 문제를 제기한 중소기업의 정보가 유출돼 대기업으로부터 보복당할 여지만 키웠다”며 “법률상 기업에 대한 조사 등 상당한 권한을 지닌 공정위가 시장을 제대로 감시한다면 중소기업의 사정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와 대기업이 외치는 ‘동반성장’은 구호만 클 뿐 실체없이 스러지고 있다. 제정 30주년이 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행위를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한다”고 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계약관계의 ‘갑’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현재의 시장은 중소기업에게는 반칙이 판치는 결투장이나 다름없다. 법이 준수되고 중소기업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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