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어린이’를 위한 쉬운 내용과 표현일 것이다. 글과 그림이 결합돼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그림책은 아동 교육의 도구로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부터 인간에 대한 철학적 문제까지 새로운 주제에 도전하는 그림책들이 늘고 있다. 그림책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그림책 몇 권을 만나보자.


권윤덕의 『꽃할머니』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문제를 그림책으로 끌어들였다. 그림책은 故심달연 할머니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부대별 이용일 할당표’ 그림과 “내 잘못도 아닌데 일생을 다 잃어버렸다”는 할머니의 고백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견뎠을 비극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그림 속 할머니는 뒤돌아 서있거나 두 눈을 감고서 시선을 회피한다. 하지만 표지와 마지막에서 할머니는 두 눈을 뜨고 정면을 응시하며 ‘역사를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이 책은 중국·일본과 공동으로 기획해 3국에서 모두 출판될 예정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지구온난화로 파괴되는 자연은 조원희의 그림책에서 『얼음소년』이 됐다. 얼음소년은 도시가 이렇게 계속 더워지면 죽을 지도 모른다며 전전긍긍한다. 그러던 중 소년은 TV에서 북극을 보고 북극으로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떠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소년의 끝은 어땠을까. 얼음소년은 북극행 비행기에서 나오는 열에 녹아 사라지고 만다. “마지막 비행기도 놓친 걸까요?”라는 물음 옆 녹아버린 소년의 모습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다양한 기법 시도도 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작가는 도시와 사람들을 모두 붉은 빛으로 표현했다. 붉은 빛과 푸른 빛의 대비로 도시에 어우러지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 밖에도 둘 사이의 이질감을 더하기 위해 컴퓨터 콜라주 기법이나 오일파스텔과 사인펜을 사용하는 등의 변화를 시도했다.


한편 그림책은 인간의 욕망, 폭력성과 같은 철학적 주제에도 접근하고 있다. 아민 그레더의 『섬:일상적인 이야기』는 경계심이 촉발한 감정의 끝을 보여준다. 발가벗은 낯선 남자가 파도에 떠밀려 어느 섬에 닿는다. 섬마을 사람들은 경계어린 눈빛으로 이방인을 주시한다. 섬마을 여자의 흰자위와 힘줄은 극대화돼 그려져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을 짐작케 한다. 막연한 경계심이 두려움과 증오로 번진 순간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을 감금하고 구타한다.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자 종국에는 이방인을 파도에 떠내려 보내고 이방인이 다시 찾아올 수 없도록 마을 둘레에 검은 장벽을 쌓는다. 작품은 두려움의 해소란 미명 아래 폭력도 서슴지 않는 인간의 모습과 직면하게 한다. 섬마을 사람들의 농기구를 창과 칼처럼 그려 폭력성을 배가하려는 시도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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