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동향] 외규장각 도서 반환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에게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는 지난해 11월 G20회의의 한국 프랑스 정상 간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으로 이르면 이달부터 5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5년 단위의 갱신 대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에 반환되는 도서는 조선 왕조에서 행해지던 의례의 실무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의궤(儀軌)』의 일부인 191종 297책이다. 현존하는 의궤는 총 637종이며 이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 규장각으로 현존 의궤의 87%인 553종을 보관하고 있다. 규장각이 보관하고 있는 의궤 중 왕을 위해 만들어진 고급 어람본은 148종이지만 이번에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가 대여 환수되는 의궤는 186종이 어람용 의궤로 규장각보다도 38종이 더 많다. 김남윤 연구원(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어람용 의궤는 비어람용 의궤와 비교했을 때 내용상 차이는 거의 없으나 장정이나 기록에 쓰이는 재료들이 최상품으로 상태가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조선 왕조는 유교식 국가 의례 형식을 규범화한 의례 표준서 『국조오례의』와 더불어 개별 의식의 현장을 세세하게 기록한 『의궤』를 함께 편찬했다. 의궤는 『국조오례의』에서 표현되지 못했던 각 의식에 대한 세밀한 채색화를 통해 시대에 따른 의식의 부분적인 변화를 담는 동시에 의식 집행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사료다. 특히 의식에 지출된 비용과 관련한 관원의 명단, 의식의 주요 장면은 물론 의식에 사용된 도구를 제작한 장인의 이름까지 기록된 의궤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선만의 독특한 기록 문화유산이다. 이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의례의 상세한 사항들을 투명하게 기록함으로써 민본주의를 지향했던 조선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또 이번에 환수되는 의궤에는 국내에 없는 유일본 18종이 포함돼 있어 환수 이후 이를 바탕으로 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 행사에 관한 상당한 정보를 담고있는 의궤는 조선 왕실 연구를 위한 필수적인 사료다. 조선시대 전례(典禮)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송지원 교수(규장각한국학연구원)는 “프랑스 소유 18종 유일본이 환수된다면 해당 의궤들의 명칭을 확인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의궤에 수록된 왕실 의례 절차나 당대인들의 복식과 더불어 미술사 영역에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연구가 가능한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 언급했다. 실제로 의궤는 행사에 쓰인 주요 도구들을 그린 도설(圖說)과 의식 참여자들의 행렬 모습인 그림 반차도(班次圖)를 통해 그림 기법과 물감의 성격 등 미술사에 관련한 연구에도 중요한 바탕이 돼왔다.

이처럼 왕실의 국가 전례와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는 의궤는 정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한 현장 기록을 통해 당시 백성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도 기능한다. 허태구 선임연구원(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의궤는 재정의 운영을 비롯해 일꾼들의 일당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어 조선의 사회·경제사 연구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윤용출 교수(부산대 역사교육학과)는 저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에서 토목공사 관련 의궤들을 바탕으로 조선의 요역제와 함께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 등 그들의 일상적 삶을 조명함으로써 대규모 국가 행사들을 다룬 의궤가 조선 시대 서민들의 일상 연구에도 주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인 바 있다.

이번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임대 기간이 5년이고 기간 연장을 위해서는 재계약을 해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1993년 양국이 합의한 영구임대 방식에 비해 미흡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역사 연구의 바탕이 되는 의궤의 상당수가 국내로 환수되는 것은 매우 큰 가치가 있다. 이상찬 교수(국사학과)는 “어떤 형식으로든 한국에 돌아온다는 점에 주목했을 때 한국이 문화재 약탈의 국제법적 불법성을 제기하고 논리적으로 맞서 결국 반환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번 건을 계기로 환수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관심에서 더 나아가 문화재 소유권과 환수 논리 일반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환수가 예정된 외규장각 의궤가 학술적 측면과 더불어 문화재 환수 전반에 있어서 향후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