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서평] 칼 구스타프 헴펠,『과학적 설명의 여러 측면』

칼 구스타프 헴펠, 20세기 과학철학의 고전

누구나 동서양의 고전(古典)을 두루 읽으면 좋다고 말한다. 특히 낯선 분야의 고전을 읽으면 자기 분야에 갇혀 좁아지기 쉬운 시각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참신한 이론과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두고 구태여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고전을 읽어야할까 의아해할 수도 있다. 양자역학의 근본적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한 보어나 하이젠베르크의 저작은 복잡한 수식을 풀기 바쁜 현대 물리학도에게 이는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들은 어쩌면 유럽 물리학자들이 불필요한 ‘철학적 논의’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불평한 미국 핵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나 ‘누구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문제될 것 없다’고 장담한 괴짜천재 물리학자 파인먼에게 더 공감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 학문 조류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학술적’ 이득이 분명히 있다.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현재 한창 연구 중인 주제가 왜 중요하다고 여겨지게 됐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철학계에서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의 바람직한 형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이는 1971년 초판이 나온 롤스의 「정의론」이 제시한 문제의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현재 학계에서 당연시되는 연구 방법론이 처음 등장할 때는 상당히 논쟁적이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신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가 비둘기로부터 얻은 결론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로 확장하기 위해 동원한 수사를 읽어보면 현대 심리학 연구 방법의 숨은 전제를 알아차릴 수 있다.

칼 구스타프 헴펠(1905-1997)은 20세기 과학철학의 역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독일태생의 미국 철학자다. 그는 논리실증주의 운동의 산실인 오스트리아 빈 모임의 후반기를 경험했고 ‘과학적 철학’을 내세운 라이헨바흐 밑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이후 시카고대와 프린스턴대 등에서 활발하게 연구하면서 미국 철학계를 이끈 뛰어난 학자도 키워냈다. 한마디로 헴펠의 인생은 20세기 과학철학의 역사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학적 설명의 여러측면 1,2
칼 구스타프 헴펠 지음 ㅣ 전영상 외 옮김 ㅣ 나남출판
424쪽(1권), 440쪽(2권) ㅣ 각 2만5천원

 


무엇이 과학적 설명인가?

최근 헴펠의 논문모음집인 『과학적 설명의 여러 측면』이 국내 중견 과학철학자 네 명의 깔끔한 공동번역으로 출간됐다. 이 책에 실린 논문은 ‘입증, 귀납, 그리고 합리적 믿음’, ‘인지적 유의미성의 개념’, ‘과학적 개념 및 이론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과학적 설명’의 네 주제로 분류되어 있다. 이 모든 주제에서 헴펠은 후대에 이뤄질 논의의 초석을 놓았지만 특히 그의 학문적 영향력이 돋보인 분야는 역시 ‘과학적 설명’이다. 헴펠에 따르면 과학적 설명은 특정 사건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혹은 왜 일어날 개연성이 높았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즉, 뉴턴역학에 의한 지구 궤도의 예측처럼 자연법칙으로부터 연역적으로(수학적으로) 도출되거나 당신이 흡연자라면 페암에 걸리기 쉽다는 예측처럼 널리 받아들여진 확률법칙으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될 수 있어야만 과학적 설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사례가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헴펠의 과학적 설명 이론에는 우리가 과학적 설명으로부터 기대하는 ‘아하!’ 하고 무릎을 치는 그 느낌이 빠져있다. 설명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왜 그런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가 설명을 듣고서야 어떻게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알고서 우리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의 궤도가 자연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에 특별히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구가 만유인력이라는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태양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사실이 지구궤도의 그러한 움직임에 대한 우리 궁금증을 해소해준다고 느낀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단순히 현상을 법칙으로부터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인과적으로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알게 될 때 보다 만족스러운 과학적 설명을 얻게 됐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흡연과 폐암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삼촌이 폐암에 걸리게 되었는지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헴펠이 보기에 이런 식으로 인과 메커니즘이나 주관적 이해를 끌고 들어오는 것은 과학적 설명에 대한 올바른 접근일 수 없었다. 과학적 설명이 일상적 설명과 구별되는 이유는 특정 사건과 관련된 최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 있었다. 어떤 근거가 합당한 근거인지는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분석될 수 있어야 했다. 과학적 설명의 객관성에 대한 헴펠의 강조에서 우리는 과학 지식이 다른 종류의 지식과 엄격하게 구별될 수 있으며 보편타당한 법칙에 근거한 과학적 설명으로부터 세계가 운영되는 방식을 보다 합리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초기 염원을 읽을 수 있다. 또 무엇이 무엇을 발생시킨다는 인과 개념은 현상들 사이의 규칙적 연결을 넘어서는 그 무엇일 수 없다는 흄의 유명한 비판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과학적 설명에 대한 헴펠의 생각은 20세기 초 실증주의적 과학관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헴펠의 눈으로 보는 표준적 과학연구의 이미지

현대 과학자들은 헴펠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자생물학자들에게 특정 인과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일은 보편타당한 법칙을 찾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인과 메커니즘이 중요한 이유는 헴펠이 시사했듯 분자생물학이 물리학만큼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분자생물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설명하려는 현상이 물리학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 과학은 각자의 연구주제에 적합한 방법론과 타당한 설명의 방식을 찾아나가고 있다.

이상욱 교수
한양대 철학과

이런 배경에서 헴펠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헴펠의 과학적 설명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과학연구를 소개하는 서술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객관적인 근거에서 엄밀하게 유도될 수 있는 과학적 결론만이 과학연구의 목표라는 ‘표준적’ 이미지가 그것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연구의 현장에서는 보다 다양한 상황적 이해 또한 추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활동에 대해 공식적으로 취하는 입장과 실제로 수행하는 활동 사이의 간극에 보다 주목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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