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직접적 관련 없는 위원은 15명 중 2명… 대다수 보수적 성향
다양한 의견 수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 제기돼

지난달 31일 본부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준비위원회’(설립준비위) 명단을 발표하자 직원들이 본부를 항의방문해 점거 농성을 진행하는 등 이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본부와 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대표가 가까운 시일 내 면담을 진행하는 것에 합의해 농성은 중단됐으나 설립준비위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설립준비위의 구성 현황과 설립준비위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봤다.

그래픽; 한혜영 기자

◇설립준비위, 어떻게 구성돼있나=본부가 발표한 설립준비위 명단에는 총장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협의로 결정된 15명의 학내·외 인사가 이름을 올린 상태다. 설립준비위 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 △변대규 휴맥스 대표이사 △서정돈 성균관대 이사장 △서지문 고려대 교수 △손경식 CJ 대표이사 회장 △송광수 변호사 △안병우 전 충주대 총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상 외부위원) △오연천 총장 △박명진 교육부총장 △이승종 연구부총장 △노태돈 교수(국사학과) △문용린 교수(교육학과) △왕규창 교수(의학과) △이준규 교수(물리·천문학부) (이상 내부위원)

이 중 학외 인사는 법인으로 전환될 경우 변화될 사안들에 대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송광수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는 정관 작성과 관련한 자문을, 전 예산청장을 역임한 안병우 전 총장 등은 법인화 후 변화될 재정체계와 관련한 자문을 위해 선임됐다. 다른 위원들도 각계의 전문적 조언이나 해외대학의 현황 등을 참고하기 위해 위촉된 것으로 알려졌다. 7명의 학내 인사 역시 당연직인 총장, 부총장, 평의원회 부의장 등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교수들이 선임됐다. 평의원회 부의장으로서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이준규 교수까지 포함하면 인문대, 사범대, 의대, 자연대 관련자가 설립준비위에 참여하게 된다.

법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바가 있는지에 대한 본지의 질문에 각 위원들은 실질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후에야 법인화에 대한 구체적 구상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병우 전 충주대 총장은 “위원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법인화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서울대가 해당 위원들을 위촉한 것 같다”며 “법인화의 구체적 방향은 추후 더 논의해야 하나 서울대가 법인화돼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설립준비위, 불거지는 논란=이렇게 구성된 설립준비위는 올해 연말까지 △정관 작성 △법인 전환 시 최초 이사 및 간사 선임 △법인 설립 등기 △법인설립실행위원회(가칭) 구성 등의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설립준비위가 법인 전환 이후의 회계, 인사 등에 대한 대략적인 구상안을 논의하면 설립준비위의 의결을 통해 구성될 설립실행위가 세부적 내용을 채워나가는 식이다. 이처럼 설립준비위는 정관 작성 권한과 더불어 최초 이사·간사 선임권을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법인 전환 이후 서울대의 방향에 직·간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다.

이에 일부 학내 구성원들은 설립준비위가 이같은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위원들의 성향이 편향돼있어 다양하고 균형 있는 의견들이 개진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대표를 역임했고 한나라당 고문을 지내기도 하는 등 대표적인 보수 계열 인사며 서지문 교수 역시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외부 필진 등을 지내며 진보진영을 비판하는 글들을 여럿 기고한 바 있다. 송광수 변호사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수배 해제에 반대하거나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등 기본적으로 검찰주류를 대변하는 보수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대위의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현 위원회는 보수 인사 일색으로 구성됐을 뿐 아니라 위원에 노동계 대표자나 시민사회 대표자 등 다양한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포함돼있지 않기 때문에 설립준비위는 그저 본부가 주도하는 중론에 따르는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기획처가 폐쇄성을 방지하기 위해 학외 인사를 과반수로 두고 비서울대 출신 인물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을 전제로 선정이 이뤄졌다고 밝혔으나 위원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이거나 서울대에서 교수직을 역임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임된 위원 15명 중 12명이 서울대 졸업생이며 서울대 학부 출신이 아닌 3명 중에서도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서울대에서 교수직을 맡은 바 있어 실질적으로 서울대와 관련성이 없는 인물은 15명 중 2명 뿐인 것이다.

또 설립준비위에 이사 선임 권한이 있는만큼 만약 법인 전환이 이뤄져 이들이 이사회를 구성한다면 이사회에도 편향성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법인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카이스트의 경우 이와 관련된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재 카이스트 이사회의 당연직 이사를 제외한 이사들은 학계, 재계, 과학기술계에서만 선임돼 학내 여론이나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사가 없으며 이사 상당수가 기업계 인사로 이뤄져있어 한쪽으로 치우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또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체계이므로 이런 구성이 후임 이사회에까지 지속돼 학내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익명의 카이스트 학생은 “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구체적 기구는 마련돼 있지 않다”며 “이사회가 서남표 총장의 연임을 결정할 당시에도 학내에 반대 의견이 많았으나 그러한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학내구성원의 입장은?=이런 상황에서 공대위는 설립준비위 구성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대위는 지난 4일(월) 법인화 반대 성명서에서 설립준비위 명단 발표를 ‘날치기 구성’이라고 표현하며 “농성 등의 사태의 근원적 책임은 본부에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함께 공대위는 설립준비위의 해체와 함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마련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최갑수 교수는 “법인화를 전제로 한 설립준비위가 아니라 대학 발전을 위해 법인화가 아닌 다른 대안도 논의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본부와 공대위 양측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편 법인화 논의 과정에 학내구성원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자 본부는 각 교수들에게 법인화 준비과정과 각 쟁점에 대한 입장을 골자로 한 메일을 발송하며 앞으로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메일 발송 역시 대상이 교수들로만 한정돼있어 학생과 직원은 여전히 논의 과정에서 배제돼있다는 지적이다. 총학생회장 지윤씨(인류학과·07)는 “자세한 대응은 공대위의 구성원들과 논의한 뒤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주체인 학내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정보가 제공돼야함에도 학생들과 직원들을 배제하는 모습은 본부가 여전히 폐쇄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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