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법학부 석사과정
우리 역사에서 개화기는 서구의 새로운 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다. 신식 무기, 전화, 커피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 신기한 물건이나 기술만은 아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상과 제도 역시 소개됐다. 이렇듯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리고 외국에서 전래된 문물이 모두 훌륭한 것, 또는 우리에게도 적합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사상이나 제도의 경우 특히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하거나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 대체로 합의가 이뤄진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걸어왔는지를 검토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여기서는 1896년부터 1899년까지 발간되었던 「독립신문」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에는 조선의 위생상태가 상당히 열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1897년 4월 3일자, 1897년 9월2일자 「독립신문」 사설을 보면 도로를 정비하고 깨끗이 유지하여 부끄럽지 않은 외관을 갖추고 전염병을 예방할 것이라든지, 우물물을 위생적으로 관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국민 위생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확고히 자리 잡고있음을 보면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그 밖에 무엇보다 많이 강조된 것 중 하나는 신분제도의 철폐다. 「독립신문」 1897년 10월 16일, 1899년 4월 26일자 사설에서는 천부인권론을 논거로 신분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신분이 낮으면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 없고 사람이 사람을 부리는 실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신분제도가 이미 폐지된 지금은, 헌법 제11조 제2항에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를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반면에 아직도 갈 길이 먼 분야도 있다. 먼저, 차별 문제가 있다. 1898년 1월 4일과 1899년 4월26일 「독립신문」은 남녀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당시와 비교해보면 사실 지금의 상황은 훨씬 양호하다. 동성동본금혼제에 대하여 1997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등 최근까지도 여러 방면에서 변화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임금 등에 있어서 여성들이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동성애자나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매우 오랜 시간 이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차별 역시 100여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완전히 제거되기란 어렵지 않았나싶다. 제도적 차원의 개선은 물론 개개인의 의식적 노력도 필요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법규범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아직도 큰 점 또한 문제다. 「독립신문」 1896년 4월 11일자 사설은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규범과 현실은 제각각이다.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위장 전입 문제, 탈세 문제는 부끄러운 오늘을 대변한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고지식하다는 비아냥거림을 받기 십상인 세태,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이러한 지금의 모습에 일조했을 것이다. 쉽게 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변할 수 없는 부분도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멀고 먼 길을 걸어왔다. 아직도 우린 멀었다며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반대로 옛날에 비하면 세상 참 좋아졌다며 지금도 남아 있는 불합리를 모르는 척 하는 것 또한 권장할만한 일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살펴봄으로써 그간 이루어낸 긍정적인 성과는 축하하고 장래에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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