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햄릿을 수사한다

인터넷 소설이 범람하며 소위 작가의 넘볼 수 없는 ‘자격’은 많이 무너진 듯하다. 이에서 나아가 글을 읽는 행위, 즉 독서도 창작과 같은 생산 활동으로 간주하는 학자가 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명작들의 독서법에 딴죽을 걸며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 개입하는 독서법, 이른바 ‘추리비평’을 통해 명작의 해석에 반기를 든 그의 책이 출간됐다. 지난 25일(월) 방한한 피에르 바야르 교수(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과)의 『햄릿을 수사한다』가 바로 그것이다.

바야르 교수는 독서 또는 비평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상식적인’ 주장을 해온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전작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는 우리가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직접 읽은 책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읽지 않은 책도 읽은 책처럼 비평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또 그는 전작 『예상 표절』에서는 시대적으로 앞선 작가가 후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상을 보여주며 또 한 번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다. 열광과 비난의 양극단의 반응을 동시에 몰고 다니는 바야르 교수. 그가 이번에 자신의 ‘비상식적’ 접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영문학 불후의 고전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바야르 교수는 문학 작품을 읽고 떠들어대는 우리들의 모습이 ‘귀머거리들의 대화’와 같다는 말로 명작을 ‘수사’해 나간다. 동일한 문학 작품을 읽는다고 해도 우리가 완전히 똑같은 대상을 두고 논의를 한다고 볼 수 없다. 이 주장은 일견 명작이 많은 이(異)본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주장인 듯 하지만 그는 동일한 판본을 근거로 얘기하더라도 결코 같은 ‘텍스트’를 갖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로마는 로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 어디든 있다’라는 코르네유의 시구를 예로 들며 첫 번째 로마는 “로마에 대한 영원한 생각”을, 두 번째 로마는 “로마라는 도시”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동일한 텍스트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텍스트의 물질적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우리의 정신적 작용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옳다.

바야르 교수는 「햄릿」에서 햄릿의 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 복수를 명령하고 자신의 현현을 클로디어스 숙부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는 것에서 곧바로 클로디어스 숙부가 햄릿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소개한다. 클로디어스가 아버지 햄릿의 귀에 부었다는 독은 ‘언어’에 대한 은유이며 실은 숙부의 압박을 받고 왕이 자결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개연성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개별 단어 하나에 담긴 정신 작용에 대해 예민한 관찰을 늦추지 않는 바야르 교수의 특징은 문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그의 이력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작품의 단어 하나하나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읽어내는 정신분석학을 작품 분석과 연결시킨다면 한 단어에 대한 정신 작용도 그 중요성이 커진다. 예컨대 “사느냐 또는 죽느냐”로 시작되는 유명한 독백을 인용할 때 라캉은 “사느냐 또는”만을 인용하지만 위니컷은 “또는 죽느냐”를 인용하며 서로 다른 관심으로 작품 속 인물의 심리를 분석해 나간다.

바야르 교수의 햄릿 수사가 그 파격성을 넘어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사고가 상상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햄릿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사고를 반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이 ‘책 속 인물’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하기보다는 그의 말대로 “무한히 확장되는 텍스트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이러한 ‘귀머거리들’의 독서법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작품의 불완전성을 이용해서 작품 주위로 추가 공간을 여는” 피에르 바야르 교수의 관점이 추리비평 3부작의 이전 두 작품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셜록 홈즈가 틀렸다』에서 어떻게 적용됐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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