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김태욱 기자 ktw@snu.kr


‘설득하는 말하기’가 일상생활 속에서 큰 파급력을 행사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 ‘말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법’을 다루는 수사학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대학신문』은 그동안 오해와 편견에 시달렸음에도 면면히 2500여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수사학을 다시 조명해보려 한다.

 최근 설득 언어의 영향력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서적들이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존 사회의 전복과 체제 파괴로만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혁명은 이제 대중들을 설득하는 말하기를 통해 가능하다.(제이슨 델 간디오 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또 사람들이 쉽사리 ‘다른 세상’을 꿈꾸지 못했던 것은 보수 반동 세력의 어법이 그동안 반복해서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앨버트 O. 허시민 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바야흐로 소통과 설득의 어법이 중시되는 시대, ‘설득의 학문’이었던 수사학을 돌아본다.

수사학 수난의 역사

“무질서하고 소란스러운 군중을 조종하고 선동하기 위해 마치 환자에게 필요한 약처럼 만들어져 무질서한 국가에서나 사용되는 도구”(몽테뉴), “수사학은 웅변가의 재주이며 이는 인간의 약점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이용하는 것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다”(칸트)와 같은 말들은 그간 수사학이 지나왔던 모진 풍파를 짐작케 한다.

수사학에 대한 비판들은 수사학 전통과 역사를 함께했다. 당시 비판의 대상은 흔히 ‘궤변론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피스트(sophist)들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옛날의 수사학』에서 시칠리아 왕정 붕괴 후 재산소유권에 대한 분쟁에서 소피스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재판에서의 승리를 위해 저명인사들로 구성됐던 배심원단을 설득하기 위한 ‘말하기 교사’로 활동했던 초기 소피스트들은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 당시 민주주의가 퍼져 있었던 그리스 전역에서 설득의 화법을 전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지혜의 전도사’를 자임했던 소피스트들은 여러 폴리스를 돌아다니며 판이하게 다른 도덕과 법체계를 접했다. 그 결과 철학자 플라톤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한 절대적 진리를 믿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각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가장 적합한 가치는 다르다는 사고에 자연스럽게 이르렀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이 사용했던 수사학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극단적 상대주의의 입장을 취하며 민중을 호도하는 것에 일조했던 학문으로 비춰졌다. 특히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모든 것이 진리’라는 공허한 주장을 펼친다고 말하며 수사학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는 소피스트들이 향후 2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궤변론자’로 불리는 데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수사학을 위한 해명

그동안 철학의 아버지로 높은 권위를 구가했던 플라톤의 영향으로 수사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간과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는 언어로 세계를 축조할 수 있다는 인식론에서 비롯했다. 독일 수사학자 게르트 위딩에 따르면 소피스트들은 말하기에 내포된 파급력을 포착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소피스트는 인간이 언어라는 우주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고 언어 저편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를 기초를 마련했다”고 말하며 소피스트들에게 세계와 진리는 그것이 표현되는 언어에 따라 달라진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대론적 입장은 현실 속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으려 했던 시도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 소피스트인 이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성 안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지식(epistêmê)이 없지만 판단력에 의해 구성되는 의견(doxa)에 의해 항상 그렇지는 않아도 대부분 가장 좋은 것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이들은 절대불변의 일원적 진리 체계를 부정하고 현실에 부응하는 가치를 선택하려 했던 것이다.

또 수사학이 탐구하는 대상인 ‘설득’에 대한 필요성은 통념상 수사학의 대표적인 ‘적’인 플라톤에게도 인정됐다. 박성창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수사학』에서 “플라톤은 수사학을 두 개로 구분한다”며 “플라톤이 제안하는 ‘좋은 수사학’은 철학자들이 진리에 대한 논변을 전개해나가는 데 사용되는 수사학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진실에 대한 추구를 목표로 하는 ‘좋은 수사학’은 소피스트를 비판했던 플라톤에게도 철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플라톤은 정감적 영역에 기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탈바꿈시키는 수사학이 전적으로 논리에 의존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사학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믿었다. 논리성의 토대에서 수사학이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는 플라톤의 이러한 주장은 이후 수사학이 철학과 대립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자정의 기제가 됐다. 이러한 비판의 정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 논거를 착안할 때 대중들의 정념보다는 이성을 염두에 둔 논증을 강조한 수사학의 체계를 마련하기도 했다.

수사학과 민주주의

수사학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수사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학계에서는 수사학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조류 속에 로고스적 측면을 크게 부각한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설득 전반에 관심을 집중한 이소크라테스의 견해 위에 수사학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견해가 주목받고 있다.

기존 수사학을 학문의 영역으로 체계화한 대표자로 인식됐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위한 논변을 만드는 단계를 다섯 가지로 체계화하고 각각을 논거발견술(inventio), 논거배열술(dispositio), 표현술(elocutio), 기억술(memorial), 연기술(actio)로 칭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위한 논변이 가지는 일련의 원형이 있다고 믿었다.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주요 개념들은 플라톤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의해 정립된 수사학은 철학과 교집합을 이루며 철학적 논변을 전달하는 데 적합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이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오히려 수사학의 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사학의 기술이나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는 ‘말의 기술’이라는 의미로 흔히 수사학을 칭할 때 쓰이는 ‘레토리케(rhêtorikê)’ 대신 ‘말에 대한 탐구와 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수사학의 목표는 단지 말을 잘하게끔 하는 기술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훌륭한 연설가를 만드는 데에 있다고 봤던 것이다. 이소크라테스는 ‘연설가의 능력을 갖춘 사람(rhêtorikos)’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상정하고 올바른 언어 사용 능력이 훌륭한 연설가를 만든다고 믿었다. 연설가의 논변은 대중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가치관 위에서 가능하다. 그는 연설가가 되기 위한 교육과 수사학을 통해 대중의 관습과 가치관에 대한 측면(ethos)에 무게를 둔 논변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습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헌 교수(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소)는 “수사학이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대답을 새로운 출발점에서 찾는 것은 앞으로 수사학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에 생산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며 “그 출발점으로 이소크라테스를 고려해 봄직하다”고 전했다.

이소크라테스의 전통에서 정립된 수사학은 진정한 소통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수사학회장 양태종 교수(동아대 유럽어문학부)는 “수사학은 청중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세워진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학은 플라톤처럼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개연성’위에 논증의 토대를 세운다. 그로 인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둔다는 점은 수사학에서 민주주의의 주요 원리인 ‘다원성’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헌 교수는 “수사학은 연설을 통해 청자들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 설득은 일원적 가치에 대한 일방적 강제가 아닌 ‘조금 더 나은 것’을 지향하는 합의의 형태”라며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기능할 수 있는 수사학의 모습을 전망했다.

우리는 이제 다시 태초 이래 존재해왔던 말의 힘에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류 속에서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지난 세대를 반성하고 ‘설득의 말하기’를 통한 평화롭고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 꾸려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장구한 역사를 거쳐 살아남은 수사학이 바로 이러한 시대적 소망에 부응하기 위해 입을 열 수 있을까. 소피스트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짓눌려 왔던 수사학은 편견의 짐을 던져버리고 진정한 ‘소통의 학문’으로서 이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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