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Nature」지 최신호에 실린 한 논문이 과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유인권 교수팀(부산대 물리학과)이 속한 국제공동연구그룹 STAR 실험팀은 논문 「Observation of the antimatter helium-4 nucleus」에서 미국의 상대론적 중이온가속기(RHIC)를 이용해 인류 역사상 가장 무겁고 안정적인 반(反)물질(antimatter) ‘헬륨4 원자핵’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중이온가속기는 금 원자핵 두개를 빛의 속도로 충돌시킨다. 충돌을 통해 발생한 수 조(兆) 도의 고열은 원자핵을 녹여 우주가 탄생하기 직전의 거대 에너지 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 거대 에너지는 곧 ‘미니 빅뱅’을 일으키며 쿼크와 같은 작은 입자들과 반입자들이 생성되는 초기 우주 상태를 재현한다. 그 실험 과정에서 STAR 실험팀이 반물질 헬륨4 원자핵을 검출해낸 것이다.
 
◇못 찾겠다, 반물질!= 반물질이란 보통의 물질을 이루는 소립자(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의 반입자, 즉 모양과 질량 등 모든 성질이 입자와 같으나 전기적 성질인 ‘전하’만 반대인 입자로 구성된 물질을 말한다. 물질은 전자(-1)와 양성자(+1), 중성자가 결합한 원자핵으로 이뤄져 있다. 다시 양성자는 2개의 업쿼크(+2/3)와 1개의 다운쿼크(-1/3), 중성자는 1개의 업쿼크와 2개의 다운쿼크로 이뤄진다. 반면 반물질은 같은 구성이지만 전하만 다른 전자의 반물질 양전자(+1), 반(反)업쿼크(-2/3), 반다운쿼크(-1/3)들로 이뤄져 있다. 반물질 헬륨4 원자핵의 경우 반(反)양성자 2개, 반중성자 2개, 즉 총 12개의 반쿼크들로 이뤄져 있다.

반물질의 존재 여부는 이미 1920년대 후반 영국의 물리학자 디락(Dirak)에 의해 예측됐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해 ‘디락 방정식’을 얻은 그는 입자의 에너지가 음수(E=-mc²)인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신이 발견한 사실이 상식에 반하는 것임을 알았지만 디락은 추론에 추론을 거듭해 전자와 전하 부호만 다른 반입자, 즉 양전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그렇지만 반물질의 존재가 이론적으로는 예측됐더라도 실제로 관찰할 확률은 매우 낮다. 입자가 반입자와 만나게 되면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완벽하게 ‘쌍소멸’하기 때문이다.

◇반물질이 하나도 아니고 덩어리로?=이번 실험은 반입자들이 ‘뭉쳐 만들어진’ 반물질 원자핵이 검출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고등과학원 고병원 교수는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탑 쿼크(Top quark)와 같은 독립적인 반입자는 만들어졌지만, 원자핵 형태의 복합입자가 검출됐다는 점에서 이번 실험결과를 주목할만 하다”고 말했다. 낱개로 흩어져 있던 레고 블록 상태의 반입자와 달리 레고 블록이 결합된 덩어리로서 반물질이 검출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실험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STAR 실험팀은 중이온가속기에서 금핵-금핵 충돌을 약 10억번 시도했지만 검출된 5천억개의 입자들 중 헬륨4 원자핵은 고작 18개였다.
입자수준이 아닌 반물질이 가속기에서 직접적으로 꽤 오랫동안 관찰된 점도 이번 실험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유인권 교수는 “표준 모델에 따르면 반물질 헬륨4는 수 조분의 수 조분의 1초 동안만 존재할 수 있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100만분의 1초 동안 지속됐다”며 “기존 모델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초기 우주의 모습 밝혀줄 반물질!=이처럼 낮은 검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과학자들이 반물질을 검출하기 위해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 우주 모습에 대한 단초를 반물질이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반물질은 빅뱅 당시의 물질과 같은 양만큼 동시에 생성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반물질을 실제로 검출하고 분석함으로써 초기 우주의 진화와 관련해 여전히 남아 있는 많은 물음표들을 지워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금 세상이 ‘무슨 이유’로 물질만 남고 반물질은 사라졌는지에 대한 연구는 물리학계의 오랜 숙원과제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대칭성’이 자연의 아름답고 고유한 특성이라고 믿어왔는데 물질-반물질의 대칭성 붕괴는 이러한 관점을 최종적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 유인권 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던 이창환 교수(부산대 물리학과)에 따르면 “반물질과 관련한 실험들이 축적되면 물질-반물질의 ‘대칭성 깨짐’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다”며 “이는 초기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물질이 들려줄 우주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미국에서는 스페이스 셔틀을 통해 국제우주정거장에 ‘AMS(Alpha Magnetic Spectrometer)’를 설치해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반물질을 탐색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또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스위스 소재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의 강입자충돌기(LHC)에서도 입자를 가속해 반물질을 검출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유인권 교수는 “강입자충돌기는 미국의 중이온가속기보다 수십배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키기 때문에 어떤 반물질이 어떤 새로운 양상을 보일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반물질이 도난당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에서 나올 법한 반물질이 이제 현실에서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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