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동향]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지난달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 교수) 산하에 ‘트랜스내셔널인문학 협동과정’이 개설됐다. 트랜스내셔널인문학은 근대적 국가 권력에 따라 편제된 학제에 구애받지 않고 인문학 내 학제 간 연구를 시도하는 흐름이다. 임지현 교수(한양대 사학과)는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인문학 학제는 분과 경향이 심하다”며 “비정상적인 학제 간 틀을 넘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번 시도는 국가 및 민족 간 경계를 넘어선 학문 연구 흐름이 제도권 교육에 첫발을 내디딘 시도로 평가된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협동과정’은 문학·역사·철학 등의 전공으로 세분화돼 시범적으로는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며, 정근식 교수(사회학과), 윤해동 교수 등이 연사로 참여하는 ‘트랜스내셔널강좌 시리즈’도 주최한다.

실제 트랜스내셔널연구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임지현 교수의 역사 교양서인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가 눈에 띈다. ‘일국사를 제일의 목표로 하는’ 기존 국사교과서의 견고한 틀을 깨기 위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일화’들을 들려줌으로써 교과서를 ‘정전(正典, canon)’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는 책이다. “이미 패러다임의 전환은 시작됐다”고 말하는 임 교수는 “인문학 연구자들의 상상력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사한 견지에서 윤성호 교수(한양대 영문학과)는 탈국가적 시각을 활용해 한 문화권 안의 시선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을 해석한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을 대표작으로 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이창래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한편 이번 트랜스내셔널인문학 학제 편성이 특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라는 입장도 있다. 학계에서 꾸준히 진행돼 온 비교연구, 교차연구, 국가 간 공동연구 등은 상대적으로 오래된 트랜스내셔널 연구라는 것이다. 노명호 교수(국사학과)는 “고대부터 국가 간 교류는 항상 있어왔고, 근대 이후에는 이것이 빈번해졌을 뿐”이라며 “이 상황에서 초국가적 연구는 일견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소위 내셔널리즘적 시각을 가진 연구자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세계화의 경향을 감안하면 일국사적인 관점에서 다룰 수 없는 주제가 많기 때문에 탈국가적 시각의 연구는 “자연스런 경향”이라는 견해다. 문학평론가 서영채 교수(한신대 문예창작학과) 역시 “현장문학에서는 90년대를 지나며 비평에서 민족 담론이 사라졌다”며 “현재는 문학에서 오히려 내셔널리즘 경향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임지현 교수는 기존의 비교 연구가 서구중심적 시각에서 이뤄졌음을 지적한다. 임 교수는 “비교사 연구가 진행돼 왔지만 오히려 세계사적인 상황을 폭넓게 고려하기 보다는 각국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적 담론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짙었다”고 말한다. 자국과 타국의 경계를 넘어 종합적 연구를 수행하기보다는 차이점에 초점을 둔 비교를 통해 자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존 비교사 연구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탈국가적’ 연구 흐름이 역설적으로 국가 간의 경계를 토대로 소위 강대국 중심의 학문 편제를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서영채 교수는 “인문학 내부의 학제가 아예 사라진다면 독문학, 불문학 등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학문 영역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학제가 통합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인기학문 사장을 경계했다. 따라서 인문학 내부의 학제 간 연구 흐름을 학부 과정까지 확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트랜스’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서 서 교수의 말처럼 “메이저만 득세하고 마이너는 죽는” 풍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내셔널 연구 흐름에 대한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지켜보면서 눈을 학내로 돌려보자. 학내에서도 이미 근대적 국민 국가 구분에 따른 학제 편성을 허물려는 시도가 진행됐다. 1999년부터 제기돼 꾸준히 논란이 된 3史과(국사학과·동양사학과·서양사학과) 통합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임지현 교수는 이에 대해 “당연히 통합돼야 할 것이며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학제의 산물”이라고 비판했지만, 학내에서는 ‘기초학문 사장’과 행정적 제반 문제 등으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향후 예상되는 동향으로 ‘서울대 아시아학부’(가칭)의 창설이 있다. 인문대 변창구 학장(영어영문학과)은 학부 과정으로는 아직 독립된 학제를 갖추지 못한 일본,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등에 대한 언어·문화 연구를 위해 인문대 산하에 아시아 학부를 창설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트랜스내셔널인문학 흐름에 대해서는 그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지만 현재 국내 인문학의 연구와 교육이 더욱 깊어져야 한다는 연구자들의 목소리는 공통적이다. 노명호 교수는 “역사란 것은 일국사적인 관점에서 봐야할 때도 있고 통합된 시각에서 봐야할 때도 있다”며 학제 또는 학계 동향이 ‘트랜스’와 비(非)트랜스로 양분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내비쳤다. 노 교수는 “트랜스 연구를 하더라도 일국사 연구의 토대가 마련된 상태에서 풍부한 논의가 나올 수 있다”며 “말로만 외친다고 될 것이 아니라 교류사·비교사 연구가 심화되고 선행 연구가 축적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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