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석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대지를 움켜쥔 거대한 신경세포의 시냅스에서 분홍색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봄소식을 세상에 알린다.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을 듣고선 남몰래 낙화를 받으며 떠올린 생각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유전공학연구소 앞 늦깎이 벚나무 덕분에 꽃에 대한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날 보는 벚꽃은 사랑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 같았고 비를 맞아 떨어진 벚꽃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져버린 사랑 같았다. 그러나 한가하게 봄타령이나 하고 있을 때 직업 의식을 자극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낙화의 과정에서 잎을 이루는 세포들이 희생된다는 것이다.

9년전 3명의 과학자들이 예쁜꼬마선충에서 죽기 위해 태어나는 세포를 발견하여 노벨 생리의학상을 탔다. 이들이 규명한 세포자살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개체의 형태 (손가락 사이의 물갈퀴가 제거됨)가 형성되고 암세포 같은 해로운 세포가 제거된다. 생명체는 세포가 자기를 복제하려는 욕망을 내적으로는 세포자살로, 외적으로는 면역체계를 통해 조절해 개체의 통합성을 유지한다. 이런 욕망의 조절체계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암이나 면역결핍증, 자가면역질환 등이 발병한다. 그래서 흔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을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비유한다.

생물학자들은 개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자살하는 것을 이익이 없는 순수한 이타적 행위로 보지 않는다. 다세포 생명체의 세포들은 자신이 희생을 하는 대신 동일한 유전자를 생식세포가 대신 전해준다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을 맺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시각에서 단세포가 세포자살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세포자살이 단세포 생물에도 일어난다는 연구도 보고됐다. 단세포 생물인 효모는 생태적 특성상 자신과 가까이 있는 효모가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환경 조건이 불리해지면 근처에 있는 후손을 위해 자신의 영양분을 내놓는다. 이 발견은 세포자살이 구성원들 사이뿐만 아니라 세대 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람의 부모 세대는 죽고 나서 재산을 물려주고, 그 동안 살아왔던 자연 환경을 자식 세대에게 물려준다. 우리 사회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 어느 생명체에 못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가난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가난만큼은 대물림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사랑이 너무 과해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경우도 있을 정도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구성원들간의 갈등을 넘어 세대간 갈등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 듯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과 거품이 잔뜩 낀 부동산시장이 그 예다. 4대강 사업을 통해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 것은 엉망으로 개발된 죽은 강과 국가가 진 빚더미일 것이다. 현재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신혼부부가 집을 사기 위해 몇 천 만원의 빚을 져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젊은 세대의 돈과 환경까지도 부모세대가 미리 탕진하는 꼴이다.

이러한 문제가 생긴 원인은 사회구성원들의 욕망조절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합리적 개인이 모여도 비합리적 사회를 형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개인과 사회의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효모나 암덩어리보다 못한 군집체가 될지 모른다. 개인의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고 정교한 사회적 규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의사를 표명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끊임없는 경쟁에 지쳐 힘들고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무기력을 학습 받은 나의 친구들을 위해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며 소원을 빌었다. 조그마한 벚꽃이 떨어져 자하연을 가득 메우듯 사람들의 바람이 모여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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