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우울, 공포’로 대표되는 현대인들의 공통된 감성, 분명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막연하지만 동시에 이미 만연하기도 한 시대에 대한 위기의식은 이제 이 세계의 거의 유일한 ‘본질’이 됐다. 포스트모던 담론, 대중독재론, 탈산업사회 담론, 신자유주의 비판 등 다양한 담론들이 자본주의를 진단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 분절성 때문에 이 ‘총체적 난관’을 꿰뚫는 혜안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제국주의보다 훨씬 더 제국적인’ 현대의 주권형태에 대해 분석한 『지구제국』, 이 거대한 제국의 권위에 맞서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을 이야기한 『미네르바의 촛불』의 저자 조정환이 신작을 들고 나왔다. 『인지자본주의』는 민주주의, 노동운동, 예술 등 전 방위에 걸쳐 천착해온 저자의 사상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책으로 그는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에서 이행된 제3기 자본주의를 ‘인지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용어로 규정한다. 생산수단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탈산업사회 담론, 경제 정책을 위주로 펼치는 신자유주의 담론 등과 비교해 인지자본주의는 경제영역뿐 아니라 삶의 영역 전부를 자본주의가 잠식하고 있다고 보는 데 차별성이 있다.

저자는 ‘우리의 지각·지식·감정·욕망·행동 등 인지적 요인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현상이자 인식 구조’로서의 인지자본주의가 물리적 요소인 공간과 시간에서부터 계급, 지성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삶을 철저히 재구성한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자국을 넘어 멀리 떨어진 빈국(貧國)의 농촌에까지 흡혈의 빨대를 들이대는 ‘메트로폴리스’라는 공간에 거주하고, 노동의 시작과 종료 시점이 불분명한 ‘비물질 노동’(지적 노동)에 주로 종사하며 휴식시간까지도 착취당한다.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모든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영역 안에 포섭된다. 하지만 정규직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내국인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사용자의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들은 다시 다층화되고 이로인한 갈등과 분열로 인해 자본에 더 많은 주권을 내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지성의 지형을 재구성하는 자본주의는 인문학이 마주한 복합적 상황에도 관여한다. 지성은 산업화, 자본화, 생산 영역화되고 지성의 성역(聖域)이었던 대학은 실용화를 통해 살아남을 방편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실용화가 ‘인문학의 위기’를 가져온 동시에 인문학의 예기치 못한 부흥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대학에서 추방된 인문학이 오히려 대학이라는 상아탑을 벗어남에 따라 실천과 소통을 중시하는 ‘장외 인문학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수유+너머’, ‘다중지성의 정원’, ‘아트앤스터디’ 등 인문학 그룹의 증가와 발전이 그 실례다.

인지자본주의는 최근의 구체적인 사건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후쿠시마의 원자로 폭발과 방사능 방출 상황이 ‘뚜껑 열린 판도라 상자’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인지자본주의 자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힘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통제 불가능의 상태’라는 것이다.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탈 대상이던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걷잡을 수 없는 연쇄 혁명도 통제 불가능한 자본주의의 ‘무능력 상태’를 증명한 예다. 한편 이 혁명을 인지적 성격이 강한 신기술인 ‘SNS(사회연결망서비스) 혁명’이라 일컫는 것에 대해 저자는 ‘혁명을 테크놀로지 의존적인 것으로 표상할 위험이 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주로 사용하는 지적 엘리뜨만의 과업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는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 저자는 ‘공통되기’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공통되기란 분할을 조장하는 사회에 맞서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새로움을 함께 창조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구성요소들, 즉 인간, 기계, 그리고 자연 사이의 창조적 협력에 대한 인식을 회복해야 할 것을 권고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책을 이끌어오던 단호한 분석에 비해 추상적 대안 제시에 그친 결론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독(解毒)할 방안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분절된 기존 담론들을 넘어 시대가 마주한 위기를 총체적으로 해독(解讀)하고자 한 과감한 시도는 저자의 바람처럼 ‘아픈 시대를 살아가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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