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교수
자유전공학부장

토요일 오후에 푸르름이 짙어가는 관악산을 바라보면서 교정을 걷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어울린 녹색은 마치 갓난 애기의 피부처럼 정갈하게 느껴졌다. 그 속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근 60년을 살아오는 동안 이런 경험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처럼의 신록예찬은 맞은편에서 인사를 하는 학생 때문에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근처 의자에 앉았고 그 학생은 이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변호사가 되라고 하시는데 친하게 지내는 선배는 회계학 전공해서 컨설턴트나 펀드매니저를 하는 게 제일이라고 한단다. 어느 쪽이 좋을지 저울질하느라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건 없느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했다. 제일 잘 나가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궁리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학을 2년째 다니는 지금까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더 이상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냥 일어서기에는 그 학생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예전에 교정의 은행잎이 노란 물결에 휩싸였을 때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던 일이며 대학 다닐 때 연극을 한답시고 겨울방학을 꼬박 바쳤던 이야기를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그 학생은 연신 “우와! 우와!”을 연발했지만 그 머리를 점령하고 있는 고민이 사라지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의 “우와!” 끝에 다시 화제를 고시냐, 아니면 펀드 매니저냐로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건 사실 새삼스러운 경험도 아니었다. 학생들이 남보다 우월한 조건에서 사회생활을 하려고 대학을 다닌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건 상식적인 일이다. 그건 전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있다.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서 그 자리에 앉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학생들이 잘 모른다는 점이다.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이 우리 주변에 범람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자. 권세를 휘두르거나, 돈 많은 재벌 회장 따위의 사람들은 대부분 악역을 맡는다. 너그러운 회장이나 상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 학생들이 지금 머리를 싸매는 목표가 결국 미래의 악역이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씁쓸한 일이다. 삶은 두 개의 평면이 나란히 놓여 있는 공간이다. 한 쪽에는 사회적 평면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개인의 내면이라는 평면이 있다. 학생들은 앞의 것에만 신경을 쓸 뿐 뒤의 것에는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되어 원하는 지위에 오르는가를 결정하는 데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재벌 회장이면서도 악역으로 묘사되지 않는 길이 되지 않을까?

교정이 따사로운 햇볕 아래 연녹색으로 물드는 그런 토요일 오후는 그리 쉽게 만나는 게 아니다. 그런 시간에 잠시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나는 누구인가를 돌아보는 여유를 즐겨보면 어떨까 싶다. 자신의 모습은 작심하고 연구해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찾아온 여유를 즐기면서 이런 저런 생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슬그머니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 시간을 가지는 건 절대 낭비도 아니고 사치도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살찌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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