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중문화비평 ‘왜’

 

삽화: 한혜영 기자

「이태원 프리덤」의 중독성, 서태지 결혼설에 대한 충격,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나는 가수다」, 오랜 계보를 이어온 신데렐라풍 드라마까지. 우리 사회를 흔들어놓은 사건들은 대부분 대중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동안 우리는 쏟아져나오는 대중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슈가 된 네 가지 키워드에 대해 우리의 반응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해 본다.

① 음악 가사
② 연예인 우상화
③ 경쟁 프로그램
④ 신데렐라 드라마 


최근 가수 서태지씨와 배우 이지아씨가 파경을 맞은 사실이 세간에 오르내렸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 음악에만 전념할 것 같았던 서태지기에 그의 팬들은 이번 보도에 “인생이 무너진 기분이다”며 격렬한 실망감을 드러내는가하면 “영원히 믿겠다”며 변치않는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그 어떤 쪽이든 ‘교주’라 불리는 서태지가 팬들에게 단순한 선망의 대상을 넘어 추앙의 대상으로까지 받아들여졌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비단 서태지뿐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빈느님’(원빈), ‘연느님’(김연아)처럼 유명인사의 이름과 ‘하느님’을 합쳐 부르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명인은 살과 피로 된 우상을 숭배한다’는 문학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오르는 오늘날, 대중은 왜 연예인을 우상화하는 것일까.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그 원인은 욕망이다. 그러나 이 욕망은 단순히 연예인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부터의 욕구’에서 비롯한다. ‘스타’라는 개념이 태동하기 시작한 1930년대 할리우드를 비평한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은 저서 「스타」에서 ‘부르주아적 상상’이란 말로 이를 표현한다. 당시 할리우드는 신화적인 주제에서 통속적인 주제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이는 대중의 요구에 맞물려 이뤄졌다. 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 놓여 있지만 대중은 경제, 외모, 지위 등의 여러 여건 속에서 진정으로 평등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지닌 대중은 그들이 현실에서 추구할 수 없는 가치들을 표출할 창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대중은 유명인사의 완벽함을 ‘상상’하게 됐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드라마의 ‘있음직한 상상’에는 현실의 상실을 채우려는 대중의 욕구가 담겨있다. 사람들은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김주원에 열광하지만 이것은 그 인물 자체에 대한 소유욕이 아니다.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까도남’ 김주원의 모습에서 실제로는 가질 수 없으면서도 내면의 욕구로만 간직해 왔던 ‘남자’의 모습을 본다. 이렇게 ‘스타’는 자력으로 메울 수 없어 생긴 대중의 공허한 빈틈을 충족시켜준다.

‘별들을 지상으로 데려오고 싶어하는 욕망이 이 시대의 본질적인 경향 중의 하나’라는 말처럼 우리는 머릿속에 꿈꾸던 모습들을 스타로 체화시킨다. 때문에 스타는 마케팅을 통해 우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 등장한 존재다. 우상화된 스타의 모습에는 사실 신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마치 ‘거울’을 보듯 우리의 욕구가 비친다. 서태지의 비밀 결혼과 이혼 소식에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우리의 인생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심어왔던 ‘욕망이 무너지는 것뿐’이다. 오늘도 ‘-느님’을 외치며 ‘-앓이’에 허덕였다면 거기에 투영된 우리네 욕망의 이미지를 한번 벗겨보자. 그곳엔 단지 우리와 똑같은 한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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