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나연 기자 ㅣ 사진: 신동호 기자, 김나연 기자 ㅣ 삽화: 한혜영 기자


우리는 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본다. 걷다 보면 가끔은 폐지 줍는 노인, 지하철 외판원,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같은 길에 서 있지만 들여다보면 소외된 삶의 길을 걷고 있을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 제도적 개선을 통해 그들에게 씌워진 가난의 굴레를 벗겨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학을 꼭 가야 하나요?" 10대 공부방 아이들

하교시간이 되자 교문 밖으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으러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다.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방으로 향한다.

관악구 내에는 37곳의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과 철학을 함께 가르친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학원과 같은 사교육 기관에서처럼 1등이 되거나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 대부분 밑에서 10등 내 드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1년 내내 배운 것을 또 배우는 반복학습을 진행한다.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 서상용 시설장은 “대개 기초생활수급을 받거나 부모가 장애를 가진 가정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진학이 목표가 아닌 학생들도 많다”며 “대학에 가도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다보면 성적도 떨어져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렇게 공부방 아이들은 대개 대학진학보다는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한다. 은천지역아동센터를 다니는 신영주(가명·15) 학생은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한다. 그는 “공부방에서 시간을 보낸 후 저녁 9시쯤 집에 들어가도 아버지가 안 계시기 때문에 학업이나 대학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나누지 않는다”며 “대학을 가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가게 되더라도 경제적인 문제가 걱정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신씨와 같은 공부방 아이들 중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을 가기보다 식당 서빙과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미래의 꿈을 펼칠 생각을 하기보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가지고 싶은 옷이나 신발 등을 산다.

이처럼 아이들이 꿈을 펼치기 어려운 배경에는 열악한 가정환경이 있다. 공부방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폐지를 주우러 다닌다.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짓눌린 빈곤한 부모 밑에서 청소년들은 부모를 통한 학습지도나 동기부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구인회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부모의 경제적 자원이 부족하면 사교육뿐 아니라 문화적인 경험 등 인적자본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 활동이 제약돼 아이의 학업성취가 낮을 수밖에 없다”며 “또 부모 스스로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여유가 없는 가정환경에서 부모는 아이와의 관계에 충실하게 신경을 쓰기 어려워 아이의 발달이 저해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집에 가면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다. 낙골공부방 장지호 교사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맞벌이를 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관심에 굶주려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탈선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때를 맞춰서 밥을 먹을 수 없고 생일도 축하받지 못하는 등 가족에게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빈곤한 가정의 청소년들은 학업과 발달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가난은 대물림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2010년 전국 초·중·고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73.6%로 집계됐으며 체감 사교육비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사교육 없는 학교교육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공부방이나 기타 복지시설도 맞벌이를 하는 부모의 공백을 메워주기에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빈곤의 굴레 속에서 꿈을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꿈은 이뤄진다”는 말은 막연할 뿐이다.

"지하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습니다" 중년의 지하철 외판원들

“산뜻한 봄날에 여행들 가시는 오늘 가정의 필수품인 헤어밴드를 소개하겠습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들 많이 쓰시라고 검정색 15개를 포함해  총 40개를 몽땅 포장해서 천 원짜리 한 장만 받겠습니다.”

지하철 2호선을 타면 으레 세 번 중 한번은 마주치게 되는 지하철 외판원. 이들의 배경은 다양하지만 기존에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며 재취업에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젊어서 과일 도매업을 했던 이범준씨(가명·43)는 IMF 직후 사업에 실패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리를 다쳐 근 2년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퇴원해 보니 마땅히 할 것이라고는 판촉물 장사밖에 없었다. 그는 “취직자리도 알아보고 장사도 해보고 이일 저일 전전하다 여기까지 왔다”며 “지금 내 나이에는 경비나 막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몸이 좋지 않아 힘을 들이지 않고 자본금도 적게 드는 일을 찾다보니 이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나마 지하철 외판원들 사이에서 벌이가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월세 50만원에 각종 공과금을 내고 중학생인 아이에게 구청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학교 자율학습이라도 시키고 나면 저축할 돈이 한 푼도 남지 않는다.

 

 

 

어느 지하철 외판원이 목청을 높여가며 헤어밴드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지하철 승객들의 무관심과 아이들의 철없는 야유 속에서도 '살기위해' 일을 한다.

 


일본으로 가죽제품을 납품하는 사업에 종사했던 장재형씨(가명·50)도 이씨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고전하는 지하철 외판원이다. 장씨는 “경기가 좋았을 때는 벌이도 꽤 괜찮았지만 2001년 한 차례 부도를 겪으며 2003년부터 지하철 안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먹고 살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이 되지 않아 택시기사부터 자장면 배달, 퀵 서비스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며 “사고가 잦아지며 오토바이 공포증이 생겼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고 털어놓았다. 장씨의 한달 소득은 대략 100만원으로 아내는 식당일을 한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갔고 딸 역시 대학을 가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돈이 있으면 창피해서 여기서 장사하겠냐”며 “하루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장씨의 얼굴에는 그가 겪어온 삶의 고로를 증명하는 듯 주름살이 깊게 패어있었다.

이처럼 하루 종일 지하철을 돌며 생계를 꾸리는 이들에게는 건 당 8만원의 과태료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철도안전에 관한 사무위탁 규칙’이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기존 3만원의 범칙금 대신 8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있다. 하지만 조금의 재산도 없는 이들은 과태료 고지서를 쌓아둘 수밖에 없다. 이씨 역시 집안에 쌓아둔 고지서가 수북하다. 이씨는 “위에서는 우리들이 왜 여기에까지 나와야 했는지 고민하기는커녕 무조건 과태료만 부과한다”며 “과태료를 낼 능력도 돈도 없거니와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지 않은가”라고 한탄했다.

한편 지하철 외판원들에게 있어 재취업을 하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다. 2009년부터 시행된 연령차별금지법은 연령을 이유로 고용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싶어 재취업 교육을 하는 곳도 많이 찾아가봤다. 이씨는 “실제 먹고 살 수 있는 수단이 되는 재취업 교육은 없었다”며 “나 같이 줄곧 장사만 하다 나이를 먹은 사람이 교육을 받는 것은 실효성이 없는 전시행정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먹고 살기 위해 떠들면서도 지하철 승객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점이 죄송스러워 늘 떠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제는 이 생활에 길들여졌다”며 “나도 예전에는 사업도 하고 대인관계도 맺었지만 일당벌이를 하기 위해 지하라는 세계에 들어와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왔다갔다 한다”고 애타는 심정을 드러냈다. 하루빨리 지상으로 올라오고 싶은 이들의 사다리가 되어줄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힘들어도 먹고 살려면 참아야지" 폐지 줍는 노인들

지난 3일(화요일) 늦은 4시, 기자는 신림동에 위치한 고물상 근처에서 폐지를 수거하고 있는 서희자씨(69)를 만났다. 서씨는 부양가족도 없이 혼자 길에서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린다. 돈이 될만한 것들은 모두 주워 담아 산더미처럼 불어난 수레를 끌고 하루에도 열댓 번 고물상을 들락날락 한다.

서씨는 젊었을 때 식당일을 하다 허리디스크를 얻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녹내장으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았고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서씨가 폐지 줍는 일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구청에서 진행하는 자활 근로 대상에서 제외되면서부터다. 그는 “자활 근로를 할 때는 그래도 일주일에 14만 7천원을 벌었는데 자활 근로가 끝나면서 이렇게 밖에서 고물 줍는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숨 쉬었다. “고물을 줍다보면 다리도 허리도 아프지만 먹고 살려면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서씨의 목소리에서는 묘한 체념마저 감돌았다.

서씨가 온종일 폐지를 주워 버는 한 달 수입은 12만원 남짓. 서씨는 “장애가 있으니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몇 푼 벌지도 못하는 일을 하게 되면 30만원 정도의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지 못하게 된다”며 “수입에 잡히지 않는 일이라곤 폐지 줍기뿐이어서 계속하고 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나마 달마다 9만 1200원씩 나오는 기초노령연금은 생계비에 보탬은 되지만 부족하다. 2008년 ‘기초노령연금법’이 시행된 이후 노령연금 지급대상이 만 65세 이상 노인의 하위 60%에서 70%로 확대되기는 했지만 지급 액수는 인상되지 않아 이는 노인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이라는 목적을 띤 노후생활보장제도로서는 턱없이 미흡한 실정이다.

 

 

 

 

반나절동안 폐지를 주우러 다니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할머니가 분주하게 수레를 정리하고 있다. 그가 반나절동안 모은 폐지는 천원어치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함께 지내는 가족이 없기 때문일까. 가족이 있는 노인들의 경제적 형편은 더욱 열악하기만 하다. “영감이 돌아가시고 나서 심심하기도 하고 할 일도, 먹을 것도 없으니 이 일을 한다”며 수줍게 웃는 김복녀씨(80). 김씨는 폐지 수거를 통해 버는 15만원과 기초노령연금 9만원으로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새벽 4시쯤부터 집을 나와 저녁 8시까지 하루 종일 폐지를 수거하러 다니는 김씨는 3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이 분가하며 홀로 지낸다. “아이들 키우기도 바쁜 자식들이 어떻게 돈을 보내줄 수 있겠냐”고 말하는 김씨는 부양의무자가 있어 기초생활수급비도 받지 못한다.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르면 자녀가구의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이면 부양의무를 지게 된다. 실제로는 자식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수급비가 감액되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 제외되니 자연히 의료급여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김씨는 “갑상선 수술도 받았었고 뇌하수체기능저하증도 있어 세 달에 한번 꼴로 병원을 다니는데 한번 가면 약값이 12만원이나 나온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그나마 남편이 남기고 간 전셋집 덕분에 당장 집세 걱정은 없지만 월 3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생활하기는 버겁기만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5.1%로 가장 높다. 이는 OECD국가 평균 13.3%의 3.4배에 달하는 수치다. 노인 자살률 역시 OECD국가 중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오늘날의 노인 복지는 열악하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먹고 살기 위한 돈도 없는 노인들은 폐지를 주우러 새벽부터 집밖을 나선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