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불길에 휩싸여 절멸하게 된 이유가 성적 방탕에 있었다고 말한다. 난잡하고 무질서한 성행위는 도피하는 중 잠시 뒤돌아 본 사람마저 소금 기둥으로 만드는 저주를 내릴 정도로 신을 진노케 했다. 이렇듯 분별없는 성행위에 대한 금기는 비단 신의 뜻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며 자연법에서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보편 윤리로서 그 지위를 공고히 해왔다. 심지어 여기저기서 개방과 다원적 가치를 부르짖는 지금에도 개방적 성 담론을 제기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부담이 따른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18세기 사드(Sade)의 저술은 오늘날에도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가학증, 학대음란증으로 해석되는 사디즘(sadism)의 연원인 사드의 저술에는 성행위가 매우 노골적으로 묘사돼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드를 단순히 변태 성욕자가 아닌 당시 횡행하던 극단적 계몽주의를 경계하고자 했던 반계몽주의자로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달 29일 번역 출간된 사드의 대표 소설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은 그간 사드 문학에 대해 연구해온 역자가 사드의 다른 저술들에서도 발견된 반계몽주의적 성격을 토대로 사드의 작품을 번역·해설한 연구 성과다.

사드는 방종을 추구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계몽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게 될 때 생길 수 있는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계몽주의는 중세 유럽을 무겁게 짓눌렀던 기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를 지고한 가치로 두고 그간의 속박들을 하나씩 끊어내려 애썼던 사상적 조류다. 사드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목소리로 당대 인간의 자유를 역설했던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뉴, 볼테르, 루소의 견해를 직접 피력한다. 그간 단순한 성도착자로 이해됐던 사드가 실제로는 방대한 서적들을 두루 탐독했고 당시 계몽주의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등장인물들은 여러 철학자들의 말을 직접 인용하며 고상한 대화를 하는 듯 보이지만 곧 갖은 수사와 기교를 동원해 모든 음란한 행위들을 치켜세운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비현실적인 상황을 애써 과장해 표현한 그의 묘사 곳곳에서 등장인물들을 향한 냉소를 찾을 수 있다.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은 음란한 행위를 즐기는 생탕주 부인과 그의 동생인 공자, 고위 공직을 맡고 있던 돌망세가 열다섯 살 소녀인 외제니에게 근친상간과 가학 성행위를 비롯해 살인 등 기존 모든 도덕관념들을 파괴하는 행위들이 쾌락을 위해 용인될 수 있음을 ‘교육’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녀를 모든 금기로부터 해방시키고 진정한 쾌락을 맛보게 하려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따라 외제니는 결국 자신을 데리러 온 어머니를 필설로 옮기지 못할 만큼 잔인하게 학대하기에 이른다.

소설 속에서 외제니에게 가르침을 주는 돌망세는 계몽 철학자로 유명한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견해를 차용해 ‘알몸으로 태어난 인간들은 성적으로 방탕한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억지 결론의 궤변을 장광설로 늘어놓는다. 그는 자식은 부모의 성관계에 의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식의 임무는 부모의 쾌락을 최대한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라며 근친상간을 방조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미덕은 불필요하고 특히 종교는 인간의 쾌락을 억압하는 가장 악랄한 발명품이다. 독자들이 극단적 계몽주의를 예찬하는 돌망세의 견해를 일견 사드의 생각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드가 전작 『소돔에서의 120일』에서 극단적 무신론, 유물론자였던 방탕한 인물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던 것을 함께 고려할 때, 이 또한 당시 극단적 무신론을 수용했던 계몽주의를 경계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드는 자유와 행복을 표방하면서도 무절제한 욕망을 표출하는 등장인물을 통해 극단적 계몽주의가 당면할 수 있는 파국에 대해 말한다. 이 충격적인 저술을 통해 결국 사드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한한 자유와 방종은 인간을 가장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말년에 펜과 종이를 빼앗긴 정신병원에서 혈액과 배설물로 광적인 저작 활동을 이어갔던 사드는 어쩌면 방탕한 생활 속에서 파괴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게 아닐까. 밀실 속 치명적이고 잔혹한 꿈에 시달렸던 사드의 부르짖음이 귓가에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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