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아시아란 무엇인가?: 개념과 쟁점
지난 13일(금) 국제대학원 소천 국제회의실에서 아시아연구소 주최로 학술대회 ‘아시아란 무엇인가?: 개념과 쟁점’이 열렸다. 1990년대 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담론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또 아시아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높아져 새로운 아시아 담론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이번 학술대회는 ‘아시아’에 대한 인식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의 장을 제공하고자 했다.
(동)아시아 담론은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시작됐을 무렵 태동했으며 일본의 지식인 및 정치가들이 대체로 이를 주창했다. 지향해야할 근대 국가의 모델로 서구를 설정하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를 ‘계도’하려한 오카쿠라 텐신의 ‘아시아 일체론’,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 쑨원의 ‘대아시아주의’와 같은 담론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근대의 (동)아시아 담론들은 이상화된 ‘동양’, ‘아시아 문화’를 강조하며 ‘서구=근대=보편, 비서구=전근대=특수’라는 서구중심주의 체계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침략적, 패권주의적 아시아주의로 귀결돼 역으로 자기중심주의, 패권주의를 재현하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원식 교수(인하대 인문학부)는 “3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논의된 아시아주의는 오히려 ‘일본=선진, 아시아=미개’의 체계로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아시아 침략의 용도로 이용했다”며 “그동안 타자화된 아시아와 다시 만나 진정한 아시아주의를 전개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후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아시아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아시아 담론이 다시 주목받았다. 최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뿐만 아니라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등 학계 여러 곳에서 아시아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학제 간 논의를 통해 기존 아시아 담론들과 아시아 각 국가들에 대한 연구가 보인 한계들을 지적하고 ‘아시아’라는 개념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데 필요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아시아란 무엇인가? 인식과 정체의식’을 발표한 김경동 교수(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는 서구에서 바라본 아시아와 아시아 내부에서 바라본 아시아를 논의한 이후 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대안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근대화 이후 서방은 아시아를 경멸적으로 바라보았으나 아시아의 성장 이후 나름대로의 성찰 과정을 거쳤고 아시아에서도 서구 종속적 입장에서 벗어나 내부의 관점에서 자신의 근대화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근대화를 토착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러한 대안적 근대화론은 ‘문화접변’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성취한 근대화는 서구문화를 접하고 그에 반응하면서 적응적 변동을 시도, 토착화를 해나가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김경동 교수는 “아시아는 새로운 인식과 정체의식을 싹틔워야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가 가지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내부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도모해야할 뿐 아니라 서구와의 상호작용 하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박승우 교수(영남대 사회학과)의 발표에서 바람직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한 주요 가치로 제시된 것은 유연한 개념으로서의 아시아였다. ‘동아시아 담론 리뷰’라는 주제로 발표한 박승우 교수는 90년부터 진행된 동아시아 담론들을 △경제공동체 담론 △지역패권주의(정치안보적 동아시아)담론 △동아시아 정체성 담론 △대안체제 담론으로 나눠 각각의 특성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동아시아 경제의 성장 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파생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논의는 지나치게 국익에 비중을 두고 있고 제3세계를 무시한 또다른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지역패권주의 담론은 냉전구도 해체 이후 일본과 중국 등의 패권 추구의 장 혹은 역내 국가들의 다자간 안보협력, 지역 안보공동체로 동아시아를 인식한다. 동아시아 정체성 담론은 서구와 다른 특성을 가진 동아시아만의 동일성을 강조하며 ‘유교 자본주의’, ‘아시아적 가치’를 논하지만 지나치게 문화동질성을 강조해 과잉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른다고 분석된다. 주로 최원식, 백영서, 백낙청 등 90년대 『창작과 비평』문인 계열의 학자들이 주창한 대안체제 담론의 경우 서구적 근대의 대안으로서 동아시아 담론을 빌려 왔으나 구체적인 대안이 없고 여전히 동아시아 담론으로 한반도의 분단 체제 극복을 중심 의제로 선정하는 한반도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러한 네 가지 담론들이 단절적·사변적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한 박승우 교수는 “동아시아 담론은 통합해서 논의돼야 하며 대상 역시 동북아, 동남아로 나뉘어서 생각하기 보다는 광역의 의미로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평등과 공존공영, 개방과 포용, 다양성과 관용의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공간적 외연을 사변적, 추상적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실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시간에 김병곤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는 박승우 교수에게 “아시아 국가 간 극복해야할 역사적 문제들에 대한 재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적하며 그가 제시한 동아시아 공동체 프로젝트의 지향점이 추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박승우 교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 즉 역사문제에서 발견되는 사회제도와 의식형태의 차이는 접어두고 평화공존의 원칙하에 공통점을 찾는 자세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평등과 공존공영, 개방과 포용 등이 추상적이고 당위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매우 현실적인 해결책들”이라며 “장기체류 외국인 중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80%가 넘고, 조류독감, 황사, 지역테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 중심의 담론을 넘어서서 다양한 국가, 지식전문가, 시민사회가 나서야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진행된 2부에서 ‘남아시아연구 리뷰: 현황과 과제’를 발표한 이지은 교수(인도 네루대학 역사연구센터)는 그동안 서구 학계의 지적 흐름을 추종해온 남아시아 연구의 한계를 비판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했다. 이지은 교수는 “대상지역의 특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내부적 시각을 존중해야한다”며 “동시에 남아시아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바탕으로 독자적 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2부로 나뉘어 총 7명의 논자들이 5시간 동안 발표한 이번 학술대회에 대해 아시아연구소 임현진 소장(사회학과)은 “논의된 내용들을 토대로 아시아 연구를 확장할 계획”이라며 “학생들 역시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가까이 있는 아시아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나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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