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중문화비평 ‘왜’

「이태원 프리덤」의 중독성, 서태지 결혼설에 대한 충격,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나는 가수다」, 오랜 계보를 이어온 신데렐라풍 드라마까지. 우리 사회를 흔들어놓은 사건들은 대부분 대중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동안 우리는 쏟아져나오는 대중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슈가 된 네 가지 키워드에 대해 우리의 반응이 ‘왜’ 일어났는지 분석해 본다.


① 음악 가사

② 연예인 우상화

③ 경쟁 프로그램

④ 신데렐라 드라마


최근 ‘경쟁 프로그램’이 이슈다. 케이블방송 사상 최대 시청률 기록을 연거푸 다시 세운 슈퍼스타K 2를 시작으로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 등이 인기를 끌며 바야흐로 경쟁 프로그램 전성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들은 현 사회의 중심 논리인 경쟁을 전면에 내세운다. 게다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는 기존 리얼리티 프로그램보다 실제 오디션 상황의 면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리얼하고 치열하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이 프로그램을 좇는 이유는 바로 그 ‘경쟁’ 때문일까?

경쟁 리얼리티는 경쟁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이 때 카메라의 눈은 시청자의 눈을 온전히 충족시킨다. 현대 영화 이론가들이 카메라를 두고 ‘엿보기 심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합법적 장치’로 인식했던 것처럼 방송의 컷은 실제 경쟁의 이면을 훑는다. 화면에는 준비의 결과물과 승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대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 바르르 떨리는 손끝의 클로즈업, 심사위원들의 고민, 가족이 말하는 참가자의 어린 시절…. 시청자는 이를 통해 표면적인 경쟁 외에도 무대 뒤의 갈등과 참가자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지켜본다.

이 투명함을 성공적으로 끌어올리는 열쇠는 경쟁 리얼리티의 세심한 평가과정에 있다. 여기에는 아메리칸 아이돌, 브리튼즈 갓 탤런트로 유명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 같은 독설가의 역할이 크다. 슈퍼스타K의 이승철과 위대한 탄생의 방시혁도 동일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예의의 벽’ 때문에 서로에게 독설을 내뱉지 못한다. 경쟁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 평가단의 신랄하고 직설적인 평가에 참가자들은 때때로 상처를 받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객관적인 지적은 시청자들의 간지러운 곳을 긁는다. 독설의 미학은 그 공고한 ‘예의의 벽’을 넘을 때 발생한다. 어린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꾸중처럼 경쟁 리얼리티의 독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애정으로 오히려 따뜻하기까지 하다. 경쟁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맨티와 멘토의 관계도 맥락을 같이한다. 피상적 관계를 넘은 인간적 따뜻함. 그것이 가져오는 괄목할만한 성장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버트란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이 치열한 경쟁 시대에 우리는 경쟁 프로그램을 본다. 거기에는 ‘나는 가수다’처럼 탁월한 능력의 개인이 있다. ‘슈퍼스타K’와 같이 참가자를 성장시키는 경쟁과정과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도 있다. 게다가 ‘위대한 탄생’처럼 좋은 멘토와 너무 적확해서 짜릿한 독설가가 있다. 이런 경쟁은 ‘겨루어 다투는(競爭)’것이라기보다 현실의 우리에게는 상실된 착하기 그지 없는 ‘좋은 경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경쟁을 엿본다. 며칠 전 드디어 탈락하고만 ‘미라클 맨’ 손진영에게 멘토 김태원은 “나는 그대 옆에 있었던 것뿐 그대가 혼자 싸운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건넸다. 모두들 ‘내일 아침’보다야 중요한 것들을 고민하겠지만 러셀의 한숨처럼 팍팍한 두려움을 함께 이겨낼 누군가가 과연 우리 옆에는 있을까. ‘좋은 경쟁’을 지켜보는 우리가 과연 그 ‘좋은 경쟁’을 경험할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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