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과 학장을 뽑기 위한 선거가 대학에 도입된 지 15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선거 제도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가 적지 않았으나, 근본적으로 선거 제도를 대체할 만한 대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선거와 같이 모든 교수들이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 제도이든 또 다른 제도이든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닐 것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위 후보자의 공약 선거에 길들여져 왔다. 그래서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의 공약(公約)에는 수많은 공약(空約)이 난무하였으며, 여러 집단의 요구가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선거의 속성으로 가볍게 볼 수도 있겠으나, 대학이 필요로 하는 인물을 과연 공약만으로써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스스로 대학이 필요로 하는 인물의 기준을 사전에 제시할 수는 없겠는가? 그래서 기준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후보자를 판단하고, 더 나아가 후보자 스스로가 기준에 맞도록 준비하게 할 수는 없겠는가?

최근, 새로운 총장을 선출하기 위하여 구성된 미국의 한 대학교 평위원회(Board of Regents)는 치열한 격론 끝에 후보자가 갖추어야 할 10가지 자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1. 변화를 추진할 만한 비전과 입증된 능력을 가진 인물,

2.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 추구, 지역 사회의 시민 봉사에 대한 책무 등을 포함한 대학의 기본 임무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고,

3. 정부, 의회, 사회 지도자, 교수, 직원, 학생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이들과 밀접하게 일할 수 있는 인물,

4. 모든 결과의 최종 책임을 수용하고 주도적 지도력을 발휘하며 이러한 성과를 달성하는 데 인력과 조직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인물,

5. 우수한 지성, 학술적 성과, 대학 조직 특히, 교수와 행정 업무에 대한 상당한 경력의 소유자 또는 학계 이외의 기업 또는 공공 부문에서 우수성, 지도력, 경력을 가진 인물,

6. 연구 대학의 복잡다단한 특성에 정통한 인물,

7. 책임 완수에 필요한 노련함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

8. 정부, 기업, 산업체,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대학의 기금 조성을 확대하고 다양화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한 인물,

9. 최소한 5년, 이상적으로는 10년까지 대학에 근무할 수 있는 인물,

10. 고매한 성격, 도덕성, 윤리관을 보여준 인물.

물론 평위원회 내에서도 이러한 조건이 비현실적이고 진부하다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또한 우리의 정서와 실정에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후보자의 기준을 스스로 제시해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진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우리가 제시해야 할 후보자의 자질이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도 이러한 자질이라는 기준을 설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필요한 기준을 갖추기 위하여 미리 미리 준비하는 후보자가 하나 둘 씩 늘어난다면 최선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선거 제도를 굳이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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