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일간지 일면 기사를 통해 우리 대학이 학부생을 대상으로 별도의 우등 대학(honors college)을 개설하겠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단 이 기사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내용이 단지 찻잔 속 태풍이었는지 아니면 엄청난 태풍을 불러올 나비의 조그만 날갯짓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서울대에 우등생 프로그램이라? 무슨 근거에서 이런 발상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생각 자체가 우습기 그지없다. 서울대에 아무나 입학하지 못한다는 것은 산골의 코흘리개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한해 수십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겨우 3천명 정도만 입학이 가능한 대학이 이 대학이다. 지방의 어느 군수는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서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도 한다. 이런 천하의 우등생들을 모아놓고 이들을 다시 차등화해서 우등 대학이라는 별도의 대학을 개설하겠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서울대는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이 대학이 어떤 모습의 대학이어야 하는지 뚜렷한 공감대가 없었다. 어떨 때 보면 서울대에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의 피가 흐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곳저곳 단과대학 체제로 나뉘어있던 6-70년대 서울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서울대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위상이나 방향을 논의할 때 미국의 하버드대와 같은 사립대를 지향하기도 하고 일부 주립대를 전형으로 삼기도 한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다중적인 모습 속에 각 구성원들은 또 다른 자신만의 서울대를 꿈꾼다.

몇해전 정운찬 전 총장은 서울대 학부 정원을 대폭 감축했다. 아마도 그의 가슴 한 구석에는 서울대가 아이비리그 대학처럼 소수의 정원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국민의 의사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주립대는 입학정원을 대학이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한다. 몇년전 텍사스대의 경우 학부 정원을 대폭 줄이고 싶었지만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약 4만명에 이르는 학부정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논리는 간단했다. 주민의 상당수가 좋은 대학에서 교육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정원감축으로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우등 대학의 경우에도 서울대의 정체성 혼란은 여실히 드러난다. 분명 이 제도는 미국 주립대를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학들 중 최고의 대학인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우등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프로그램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많은 인재를 빼앗긴 주립대들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프로그램은 소위 스카이대학에 대부분의 인재를 빼앗긴 다른 국립대나 수도권 일부 대학이나 고려해봄직하다.

최고의 인재를 뽑아놓고 그들을 최고의 인재로 키우기 위해 별도의 우등 대학이 필요하다면 과연 서울대는 어떤 대학인가. 어디까지 학생들을 잘게 구분하고 차등화하기를 원하는가. 그래서 이번에는 결국 서울대가 프랑스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처럼 돼야 그것이 서울대의 바람직한 모습인가.

법인화를 둘러싸고 우리 대학은 앞으로 정체성과 관련한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근시안적으로 근거가 불분명한 남 모방하기가 아닌, 우리만의 고유한 대안을 찾기 바란다. 더불어 논의 과정과 대안 모색이 보다 개방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공감하는 서울대의 올곧은 모습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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