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연
법학전문대학원
지난 4월, 열아홉의 젊은 대학생이 자신의 재능을 펴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올해 들어서만 무려 네번째였다. 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사회 각계에서는 현 대학교육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학교의 학생들은 두려움과 절박함에 몸부림쳤다. 학교 측이 사실상의 ‘징벌적 등록금제도’를 시행하면서 일정한 학점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은 0.01점당 약 6만원의 벌금 아닌 벌금을 납부하게 됐고, 무려 1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 괴물같은 제도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징벌적 등록금제도의 시행과 관련해 벌어진 일련의 참극은 대학의 현행 교육제도의 한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줬다. 등록금의 인상은 경제적인 자립능력이 부족한 대학생의 특성상 학생들에게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와 함께 경쟁체제에서 낙오된 데 대한 인격적 모멸감이 학생들을 괴롭혔을 것이며 여기에 더해 주변의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가지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이 고통을 극대화시켰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와는 반대로 대학을 다니는 것이 오히려 불효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현실에서, 대학이 만든 특정 교육제도가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 학생들의 생존권과 인격적인 존엄성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국립대인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오랜 기간 동안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소위 ‘학사관리 엄정화’라 불리는, 대학교육의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괴물이 그것이다. 학사관리 엄정화는 IMF사태 이후 국가경제의 위기에 대한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는 지적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교육을 통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방침을 설정했고 다양한 교육정책을 실시하게 됐다. 대학에서는 경쟁력의 재고를 위해 대표적으로 ‘두뇌한국21사업’(BK21사업)의 시행과 함께 엄격한 학사평가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상대평가제도를 필두로 재수강 제한과 졸업자격시험제, 유급제도 등을 실시하게 됐다.

학사관리의 엄정화로 말미암아 대학생활의 풍토도 상당부분 바뀌게됐다. 관심 있는 분야의 수업을 수강하는 대신, 소위 말하는 ‘학점이 잘 나온다고 소문난 수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스스로 탐구하고 대학시절에만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격적 성숙을 추구하는 모습들이 대학생에게서 점점 사라졌고 남은 빈자리는 학과수업과 시험공부, 그리고 취직준비로 채워지게 됐다. 어느새 학생들에게 대학은 경쟁적인 사회현실의 축소판으로 여겨지게 됐다.

하지만 이처럼 엄격한 평가시스템이 실제로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있다. 오히려 교육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는 하버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명문대들이 절대평가 혹은 느슨한 상대평가제도로 회귀하고 있다. 이는 대학의 경쟁력이 학생들의 경쟁을 서로 부추긴다고만 해서 신장되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교육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체계적인 수업시스템 정립, 효과적인 지식의 전달을 위한 강의모형 및 각 전공분야별 특성에 맞는 교수법 개발, 학생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위한 학교행정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등이 엄정한 평가를 하기에 앞서 고려돼야 할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국민에게 행복추구권을 천명하고 있지만, 이 말이 곧 국민에게 ‘행복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는 학생을 향한 일방적인 채찍질보다 학생의 자발적인 노력에 따라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대학생활을 통해 마음껏 행사할 수 있도록 대학의 아낌없는 지원 및 제도연구를 통한 진정한 교육 경쟁력의 확보가 더욱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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