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희극이라 해야 할지 비극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1982년 9월 10일 안기부는 일가친척 28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고정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안기부에 따르면 6·25 당시 충청북도 인민위원회 상공부장으로 활동한 송창섭이 월북 후 남파됐으며 그에게 포섭된 송씨 일가가 남한 사회 각계 각층에서 25년간 간첩활동을 해왔다. 공화당 중앙위원 한경희가 정계로, 군수사관 송지섭이 군으로, 개인사업자 송기준이 산업계로, 서울시 공무원 송기섭이 공무원 사회로, 대학교수 한광수와 중학교 교사 송기복이 학원계로 각각 침투해 실로 다방면의 국가기밀을 수집 보고했으며 4개 대학에 재학 중인 자녀들까지 끌어들여 학생들을 선동했다. 부마사태, 광주사태, 10·26사태 등 중요사건 때마다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한 이들이 바로 송씨 일가였다.

이것을 슬픈 일이라 해야 할지 무서운 일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기부는 송창섭이 1977년 2월까지 8차례에 걸쳐 남파되어 그 공로로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으로까지 승진했다고 발표했지만 송창섭은 1968년 김일성의 지시로 이미 숙청되었고 안기부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법정에서 피고인들이 장기간의 불법 구금 기간 동안 행해진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첩임을 허위자백할 수밖에 없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하자 검찰은 1976년에 자수한 거물간첩 김용규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김용규는 ‘너무 심하게 고문하기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간첩들의 ‘법정투쟁전술’이라고 증언했다. 검찰은 세사람에 대한 사형 등을 구형했고 1심 판결문은 공소장의 오기(誤記)까지 그대로 옮겨 적었다. 7차례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형량이 낮아지긴 했으나 이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해도 될지 모르겠다. 지난 12일 서울지방법원은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들 외에도 간첩조작 등 시국사건에 연루된 피해자들 가운데 60%는 무죄가 확정됐고, 10%는 재심이 진행 중이며, 재심 개시 여부를 심리 중인 대상은 30%다.

그런데 이 슬프고도 무서운 희극이자 비극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웬일인가. 검찰은 지난달 12일의 농협 전산망 마비가 북한의 해킹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발표는 했지만 설득력 있는 증거를 함께 제시하지는 못했다.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통일부는 북한에 사이버 테러 행위 중단을 요구했고 국정원은 민간 정보시스템에의 접근 권한 확보를 골자로 하는 사이버위기법 재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제 간첩은 컴퓨터 속에 침투한 유령이 되었는가. 유령은 고문할 수 없으니 차라리 다행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적을 만들어내는 사회가 짊어져야 할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불안해해야 하는가.

권희철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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