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교수
생명과학부
서울대에 건물이 300개에 가깝고 비싼 카페와 식당이 넘쳐 나지만 꼭 있어야 할 것 중에 아직도 없는 것이 ‘교수 휴게실’ 혹은 ‘패컬티 클럽’일 것이다. 물론 쉬고 싶은 교수는 연구실 문걸어 잠그고 소파에 누워서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잠깐 잠을 청할 수도 있다. 연구실 외에도 학과에 교수 휴게실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 가면 신문도 있고 요즘은 에스프레소 기계를 갖다 놓은 곳도 많다.

이러한 얘기를 하면서 교수가 무슨 학교에 ‘휴게실’이 필요한가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구실이나 학과의 교수 휴게실 외에 괜찮은 패컬티 클럽이 없는 것이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우선 외부에서, 특히 외국에서 손님이 올 경우에, 손님을 맞아서 담소를 좀 나누고 싶은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커피숍은 학생들로 바글거리고 시끄러워서 연령대가 40이상인 사람들이 맘 편하게 얘기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연구실로 손님을 모시기도, 썰렁한 학과 교수 휴게실로 안내하기도 마땅치 않다. 특히 서울대가 지금 이 정도는 된다고 자랑하고 싶을 경우도 있는데, 이런 기분에 딱 적합한 공간이 없다. 아마 미술관 정도가 예외일까.

학교에서 동료 교수들과 약속을 할 때도 적당한 공간이 없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점심약속을 하는데 어떤 때에는 허겁지겁 밥을 먹으면서는 나누고 싶지 않은 얘기가 있을 때도 있다. 특히 상상력을 필요로 하고 지적으로 서로를 자극할 얘기를 듣거나 들려주고 싶을 때, 식당은 별로 좋은 공간이 되지 못한다. 연구실도 마땅치 않고 같이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는 마땅한 산책로도 없다.

좋은 세미나가 끝나고 토론의 열기가 식지 않은 상태에서 연사와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을 때에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낙성대 삼겹살집으로 이어지는 자리에서는 토론에서 나눈 지적 세계는 불판의 연기와 함께 사라지고, 일상적인 프로젝트와 수업, 논문 지도로 살기 힘들다는 얘기가 대화의 주제로 등장한다.

이럴 때에는 학교에 멋진 패컬티 클럽이 하나 있어서 교수의 대화와 토론과 사교를 위한 편안하고 ‘럭셔리한’ 공간을 제공한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피터 줌터나 필립스탁 같은 최고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멋진 공간과 여유있는 인테리어, 여기에 맛있는 커피와 스낵, 그리고 괜찮은 와인과 고급 와인 글라스, 적당한 조명과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 ...

이런 패컬티 클럽은 위치가 중요하다. 아무도 쓰지 않는 구석의 자투리 공간이 아니라 동선이 교차하는 학교의 가운데에 만들어져야 교수들이 쉽게 문을 열 수 있다. 지금의 대학본부를 리모델링하면서 이를 만들 수도 있고 본부 앞 ‘총장 잔디’에 작지만 멋지고 상징적인 건물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가 이 만큼 교수를 대접한다고 자랑할 수 있는.

이런 패컬티 하우스를 만들어 놓으면 이는 점점 높아만가는 단과대, 학과의 벽을 넘어 타 분야와 지적으로 소통하고 싶어하는 교수들을 끌어 모을 수 있지 않을까? 18세기 프랑스에서 계몽사상가들을 끌어모았던 ‘살롱’ 비슷한 것을 관악산 기슭에 다시 재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원고 마감의 압박 덕분에 생긴 공상이 다시 즐거운 공상을 낳는 5월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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