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유럽연합(EU)의 확대를 축하하는 공식행사가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더블린성(城)에서 개최되었다. 지중해에 위치한 키프로스와 몰타 외에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발트 3국 등 ‘동진(東進)’을 특징으로 하는 유럽의 확대 축하 행사가 그 서쪽 끝인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것이다. 그것도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의 상징으로서 아일랜드 총독부 청사였던 더블린성에서 개최되었다. 물론 이는 아일랜드가 현재 유럽연합의 순번제 의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아일랜드의 경제적 발전과 함께 국민적 자신감이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아일랜드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동유럽 국가들에게 하나의 이상형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유럽연합의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흔히 강조되듯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영국의 1/2밖에 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영국을 앞질렀고, 현재 유럽 연합 25개국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이 3위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 이는 아일랜드 국가예산의 3-5%에 이르는 유럽공동체의 농업보조금 덕도 있지만, 또한 아일랜드가 영국시장을 넘어 유럽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일랜드는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에 비추어 유럽에서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라고 불렸고,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IT 산업국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점만 봐도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아일랜드를 하나의 모델로 삼는 이유가 쉽게 납득된다.

유럽연합(EU)에 의해 유럽 소국들이 강대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론을 이야기할 때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

하지만 유럽연합은 단지 아일랜드에게 경제적 물질적 혜택을 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일랜드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7백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는 항상 영국의 문화적 흡인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일랜드어에는 영국의 유행을 좇는 아일랜드 졸부들을 일컫는 말(shoneen)이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문화와 정체성은 언제나 영국과 영문화에 의해서 혹은 그에 대비되어 규정되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영국으로의 쏠림을 막아주는 새로운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영국의 모방 혹은 변방으로서가 아니라 유럽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더블린성을 복구하여 국제행사의 장으로 삼아 자랑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아마 폴란드의 바웬사 대통령이 유럽연합 가입을 맞이해서 “공산주의와 소련의 치하에서 폴란드가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기 위해 싸웠고, 이제 그 투쟁이 끝났다”라고 선언하는 데에도 이러한 인식과 기대가 바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가 유럽의 통합이라는 이상에 참여하는 이유도 단지 경제적 이익의 문제만이 아니라 또한 러시아의 그늘이자 동유럽이라는 정체성 규정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헝가리 대통령 역시 “헝가리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관문이었다”고 강조하는 것도, 경제적인 이점과 함께 헝가리의 정체성을 유럽 중심으로 재규정하려는 의사라고 볼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심지어 영국도, 유럽연합의 확대를 자국의 영향력 확대로 선전하는 데 반해, 유럽의 소국들에게 유럽연합은 주변 강대국의 그늘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원천인 것이다. 우리가 유럽통합을 바라보며 동아시아론을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도 이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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