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58°22′54″, 남위 34°36′13.40″. 좌표로 된 위치 정보가 와닿지 않는다면 ‘지구 반대편’이란 표현은 어떨까.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서울 남산과 대척점, 직선거리로 따지면 한국에서 가장 먼곳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끄트머리에 붙박힌 이곳은 자칭타칭 ‘남미의 유럽’이다. 과연 공항에 내리자 페루나 볼리비아에서는 드물었던 백인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고  사람들의 키도 훌쩍 커져 우리는 눈높이가 달라진 묘한 기분을 느끼며 공항을 나섰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적 경제 부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2001년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후 지금은 1인당 GDP가 1만달러 미만인 형편이다. 이에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로 길거리에서의 강력범죄는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버스 109번의 종점이 위치한 일명 109촌은 인근의 교민들 모두가 꺼리는 우범지대다. 아르헨티나가 선진국일 당시 이민 온 많은 한인들은 이 빈민촌에서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했고 그중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해 떠난 후에도 상당수의 교민들이 이곳에 남아 한인촌을 형성하고 있다. 해가 진 이후 마약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과 가게마다 문 앞에 달린 철창을 보면서 “혼자 다니지 말라”거나 “가방은 꼭 앞으로 매라”는 교민들의 충고가 실감이 났다. 실제로 우리 역시 대낮에 3인조 무장 강도를 만나 가지고 있던 옷가지와 스마트폰을 빼앗기기도 했다.

이렇게 계절도, 시간도, 치안 사정마저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지만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이곳에서 ‘말비나스’라 부르는 포클랜드 제도는 대서양 남단의 군도(群島)로, 영국과의 영유권 다툼으로 1982년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독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말비나스 분쟁은 큰 관심사다. 때문에 이곳 한인회에서는 모형을 만들어 퍼레이드를 하는 등 독도와 말비나스 섬을 함께 홍보하는 행사를 많이 벌였다고 한다. 우리 역시 13일(금) 중남미 문화원에서 연 ‘독도 콘서트’에서 말비나스 섬을 언급하며 현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음날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글학교에서 열린 ‘평화, 통일, 조국 그리고 독도’라는 주제의 사생대회에서 이곳 사람들이 독도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날의 행사로 초주검이 된 상태였지만 한국 문화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한인 2, 3세들에게 한국 문화와 독도를 알려야겠다는 각오로 대회에 참가했다.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로는 그날 사생대회에는 탈춤을 비롯한 우리의 공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보낸 2주간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많은 일들을 겪었다. 이제부터는 한국과 가까워질 일만 남았다.  

 

 

김은열 『대학신문』 객원기자
사회교육과·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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