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장 클로드 카리에르 지음ㅣ 임호경 옮김ㅣ열린책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이 출간되는 오늘날, 왜 하필 이 책을 소개하는가.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선택하고 남겨둘 것인가. 자기 자신의 존재이유와 운명에 대해 물음을 던진 “책에 대한 책”이 새롭게 출간됐다.

『책의 우주』는 세기의 책벌레, 움베르토 에코와 장 클로드 카리에르가 책에 대해 나눈 대담집이다. 지독한 공부벌레이자 열정적인 도서 수집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의 저자이자, 기호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서 그의 지적 촉수가 닿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생의 소원이 구텐베르크 성서 초판본을 입수하는 것이라는 그에게 책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품이자 재산이다.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나리오를 쓴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극인이며 문필가인 장 클로드 카리에르 역시 에코 못지않게 집요한 도서사냥꾼이다.

읽기 위해서 읽는 두 책벌레들은 전자책의 등장과 종이책의 위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애서가에게 달갑지만은 않을 오늘날의 사태에 대해 놀랍게도 두 사람이 담담하게, 하지만 큰 소리로 외치는 한 마디. “책은 죽지 않는다.” 인터넷의 발달과 이미지 문명으로의 진입이 이뤄졌지만, 오히려 글을 읽는 행위는 보다 중요해졌고 우리 시대는 다시 “구텐베르크의 우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책은 수저, 망치, 바퀴, 가위와 같이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이 발명될 수 없는 완벽한 발명품이기 때문에 그 기능과 구성 체계는 변하지 않는다. 마치 지금의 숟가락 보다 더 완벽한 숟가락이 있을 수 없듯이.

물론 디스켓, 카세트테이프, 시디롬 등의 반(半)영구적으로 여겨지는 매체들을 생각했을 때 종이라는 매체는 불안정해 보인다. 하지만 요즘의 저장매체만큼 덧없는 것도 없다. 우리는 15세기 말에 라틴어로 인쇄된 소책자는 아직도 읽을 수 있지만 만들어진 지 채 몇 년도 안 된 카세트테이프나 시디롬은 낡은 컴퓨터가 보존되지 않는 한 읽을 수조차 없다. 에코는 1985년 디스켓에 저장했던 저작 『푸코의 진자』의 초고를 이제 읽을 수 없다며 한탄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오늘날의 저장매체를 빠르게 구식으로 만들어버려 오히려 기억을 완전히 보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서 더 나아가 에코와 카리에르는 기억의 기능이 과연 모든 걸 완전히 보관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에코는 기억이 보존도 하지만 두뇌를 어지럽히는 ‘쓰레기 정보들’을 망각하는 기능도 한다며 보존할 것들과 망각할 것들을 선별하는 과정 자체가 문화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것을 보존하려는 인터넷은 문화에 반대되지만 책의 역사는 문화의 역사와 일치한다.

우리가 걸작이라고 칭하는 책들은 지성에 의한 준엄한 여과 작용을 거치고 살아남아 문화를 형성한다. 여과된 ‘지금’의 걸작들은 세월이 지나 독자들이 부여한 해석에 의해 보다 풍부해져 ‘새로운’ 걸작으로 거듭나고 이 과정은 반복된다. 『햄릿』이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문학적 질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고정된 해석에 저항하며 더 비옥해지기 때문이다. 위대한 책은 항상 살아 움직이며 문화의 토대를 굳건히 한다.

대화가 즉흥적으로 이뤄지기에 읽기 다소 산만하지만 독자들은 에코와 카리에르의 방대한 지식과 책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매끈한 컴퓨터 모니터보다 종이책의 바삭거림을 사랑하는 애서가들이 있는 한 ‘책의 우주’는 앞으로도 광활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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