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그 장구한 역사를 마주하다
대장경, 그 장구한 역사를 마주하다
  • 정혜경 기자
  • 승인 2011.05.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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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동향] 초조대장경 특별 전시회

지난 18일(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분관)이 초조대장경 판각 천년을 기념해 ‘1011-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시회를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초조대장경판의 인쇄본을 비롯해 국내에서 인쇄된 대장경뿐 아니라 중국 송나라의 대장경, 인도 남방의 팔리어 패엽경(貝葉經:나뭇잎에 쓰인 경전)과 티베트 지방에서 발견된 산스크리트어 패엽경 등 해외에서 제작된 대장경도 함께 전시됐다.

보물 101호로 지정돼있는 「상지은니대반야바라밀다경」305권

◇천년 전 고려 삼장(三藏)의 그릇, 초조대장경=대장경(大藏經)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종류다. 먼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과 같이 부처의 말씀을 새긴 목판이다. 목판이 대장경의 하드웨어라면 또 다른 종류의 대장경은 목판에 새긴 내용, 즉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대장경을 삼장(三藏)이라 하는데 이는 부처가 설법한 내용을 후대인들이 정리한 경(經), 불교 계율을 말하는 율(律), 경을 바탕으로 후대인들의 해석과 주장이 덧붙여진 론(論)으로 구성된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천축을 향해 떠나는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사실 고유명사가 아니라 삼장에 능통한 승려를 일컫는 말이다.

고려대장경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삼장을 고려에서 편찬한 것을 일컫는 것으로 처음 고려에서 제작된 초조대장경과 의천이 총 책임을 맡은 교장(敎藏), 그리고 초조대장경의 내용을 교정해 다시 제작한 재조대장경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팔만대장경은 재조대장경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번에 전시되는 초조대장경은 그보다 앞선 것이다.

초조대장경의 경판은 개성의 흥왕사에서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로 옮겨 보관되다가 고려 고종(高宗) 19년(1232) 살리타가 지휘한 몽고 2차 침입 시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초조대장경은 ‘고려에서 처음으로 판각됐지만 사라진 장경’으로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가 1965년 일본 교토의 남선사(南禪寺)에서 인쇄본 1,800여본이 확인되며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오윤희 소장은  “이론도, 학문도 없었던 초조대장경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남선사 승려들이 수장고를 열어 유물을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 남방 팔리어 패업경

◇대장경을 둘러싼 이견(異見)=이번 전시회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올해는 초조대장경 ‘판각 천년’이라고 얘기되지만 이에 대한 이견도 있다. 올해가 대장경 판각 천주년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고려 후기 문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된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版君臣祈告文)」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초조대장경 판각은 거란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물리치고자 현종 2년(1011)부터 시작돼 선종 4년(1087)까지 77년에 걸쳐 이뤄졌다. 최근 고려대장경연구소 및 동화사(桐華寺)가 대구시와 초조대장경 천년 기념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기념사업들은 초조대장경 판각이 1011년에 시작됐다는 이규보의 기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 기록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어 눈길을 끈다. 최병헌 명예교수(국사학과)는 “초조대장경이 1011년에 제작됐다는 이규보의 기록은 전란이 막 끝났던 당시의 정황상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고려대장경의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현재, 대장경에 대한 활발한 학술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그동안 소홀히 다뤄졌던 초조대장경 시점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조대장경의 독창성을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대장경 연구자 간에도 견해가 다양하다. ­­­­­특히 고려대장경 서체의 고유성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한다. 오윤희 소장은 “초조대장경은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새긴 것으로 초조대장경의 글자꼴에 대한 찬탄은 원본인 개보장에 돌려야 하는 것이 맞다”며 “고려대장경은 비단 고려만의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들의 번역과 노력이 쌓인 세계인의 공동 창작물”이라 말했다. 덧붙여 오 소장은 자칫 국수주의로 흘러갈 수 있는 ‘천년의 고려대장경’에 주목하는 과열된 시류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남권희 교수(경북대 문헌정보학과)는 “송나라에서 인쇄된 개보 대장경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19권과 초조대장경 25권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 전체적인 글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초조대장경이 무조건 송나라 대장경을 베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초조대장경은 충분히 독창적”이라고 말했다. 대장경이 기본적으로 경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속 편찬 작업을 하더라도 내용상에 큰 변화가 없지만 글자의 모양이나 서지사항 등에서 기존 대장경에 대한 교정·수정 작업이 시도됐다는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19권과 초조대장경 25권이 포함돼 있어 관람객들이 직접 송나라 개보대장경과 초조대장경의 서체를 비교할 수 있다. 
고려불교문화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되는 의천이 집성한 「대방광불화엄경소」2권

◇고려대장경의 정수(精髓), 교장=이번 전시에서는 의천이 편집한 화엄 사상에 대한 주석 교장인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도 전시됐다.교장은 대개 대장경에 이어 조성한 속편 대장경이라는 의미에서 한 일본 학자가 이름붙인 ‘속장경’으로 불렸다. 그러나 ‘속장경’이라는 말은 근거가 없을뿐더러 전통적인 삼장에 주석을 단 별도의 장을 더해 사장(四藏)으로 늘리고자 했던 의천의 의도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의천의 교장들 가운데서도 화엄 사상을 잘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는 이번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이견이 존재하는 다른 대장경 연구 영역과는 달리 의천의 교장이 고려대장경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는 것은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의천은 5천여권의 주석서들을 모아 목판에 새겼다. 남 교수는 “의천의 작업은 그동안 대장경을 두고 연구된 한문 주석서들의 결집이자 불교와 한자 문화권이 접촉해 이룬 지적 유산의 총체를 정리한 것”이라며 “의천은 대장경 연구서에 대한 체계화 작업에서 탁월한 업적을 보였을 뿐 아니라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중 ‘향언으로 풀어냈다’는 구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불교를 당시 고려의 언어로 풀어 불교의 대중화를 시도했다”며 교장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사실상 의천의 교장을 통해 당시 6천여권이었던 대장경의 규모 또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조은수 교수(철학과)는 “의천은 그동안의 주석서들을 결집했다는 것을 넘어서 엄밀한 교정을 거쳐 문헌들을 온전한 상태로 정비하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며 “의천 연구는 현재는 초기 단계라 할 수 있지만 의천이 남긴 기록들과 행적들을 살펴볼 때 이에 대한 연구는 당시 동아시아 전체의 불교문화를 재구성하는 바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티베트 지방에서 발견된 산스크리트어 패업경

대장경의 장구한 역사는 지적 유산에 대한 많은 이들의 열정과 이상, 그리고 꿈의 적층이었을 것이다. 호림박물관 신사 분관과 신림 본관은 국보 4점을 포함한 유물 40점을 20점씩 나눠 전시한다. 신사 분관의 전시는 8월 31일까지,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본관 전시는 오는 30일(월)부터 시작해 9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 왔던 긴 지혜의 역사를 마주할 기회가 주어졌다. 지혜를 담은 큰 그릇 대장경이 향후 또다른 천 년을 맞아 더 많은 지혜를 담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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