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문명이라는 컴퓨터 게임이 높은 중독성 탓에 악마의 게임이라 불리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원전부터 미래까지 고유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이 게임은 인류 역사의 다양한 요소들을 고루 반영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영토, 천연자원과 같은 자연 조건들부터 인구수, 재정, 과학기술, 군사력과 같은 물질적 차원 그리고 국제 관계, 문화 수준과 같은 정신적 차원들을 모두 고려해야만 훌륭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요소는 행복이다. 구성원들의 행복도가 낮아지면 생산력이 하락하고 재정이 악화될 뿐 아니라 군사력도 약화돼 문명의 존립이 위협받게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복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무상급식 찬반으로 시작해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와 같은 개념적 차원의 논쟁으로 발전했고, ‘3+3 정책(무상 급식·보육·의료+등록금·일자리·주거)’과 세대별로 특성화된 ‘생애맞춤형 복지정책’으로 각각 구체화되고 있다. 공공복지지출 비율이 OECD 국가 중 꼴찌인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 지형이 구성원들의 행복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몇주전 쌍용자동차에서 구조조정당한 노동자 한명이 숨졌다. 2009년 구조조정 이후 발생한 15번째 죽음이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옳았음이 비극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비극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있다. 등록금으로 인한 청년들의 좌절과 죽음이 이어지고 있으며, 높은 빈곤율 속에서 노인들의 자살률은 압도적인 차이로 OECD 1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구성원들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복지의 수혜 범위를 논쟁하는 것은 너무 한가로운 일인 듯하다.

행복을 보장받기는커녕 생명이 위협받는 슬픈 현실은 일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1등 기업 반도체 공장에서는 46명이 암으로 사망했고 대통령 사돈 기업 타이어공장에서는 지난 15년동안 100여명이 사망했다. 공기업인 전력회사의 송전탑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은 지난 3년동안 50명, 4대강 공사현장에서는 1년 8개월동안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OECD 출산율 꼴찌의 한국은 대신 자살률 1등과 산재사망률 1등을 자랑하고 있다.

탐정 김전일은 언제나 등장인물이 거의 죽고 나서야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낸다. 그의 때늦음에 몇몇 독자들은 안타까워하고 몇몇은 빈정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사회는 그런 때늦음조차 부러워해야할지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음에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15명의 평택연쇄살인사건, 20명의 4대강변연쇄살인사건. 범인은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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