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웅 명예교수
지금의 관악 캠퍼스가 이 자리로 온 것은 1975년 봄 학기의 일이다. 벌써 4반세기에 10년 남짓 더한 세월이 지났다.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비 오는 날이면 진창에 빠지기 일쑤였고, 교통수단도 원만하지 않아 정문에서 9동까지 걸어서 20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도 만두로 점심 때우려고 이수교까지 가던 여유는 있었다. 학교 시설들을 포함해 불편한 것이 지금 학생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래도 1985년까지 WHO 기준에 맞는 청정 공기를 유지하던 캠퍼스였다. 새 봄 낙성대 길에서 캠퍼스엘 들어 설 즈음에는 관악 정상에 잔설이 남아 있고 그 아래로 파란 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계절의 풍미는 이 캠퍼스가 아니면 누리기 힘든 귀한 자산이다. 사립대보다 훨씬 못한 박봉으로 생계와 연구를 꾸려나가던 교수들에게 내가 농담으로 이 정도 환경에 공기까지 맑고 매일 등산하듯 체력관리를 하니 몇 백 만원의 월급은 더 받는 셈 치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교육과 연구의 긍지까지 보태면 셈으로 계산하기 힘들어진다.

캠퍼스는 지난 긴 세월 동안 변하고 변해 이젠 웬만한 소도시가 됐다. 건물 모양이 변한 것은 물론 연구실험 시설이며 여건이 크게 향상됐다. 연구비도 이전 초기에 비해 천문학적 숫자로 변했다. 반면에 공기는 혼탁해지고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교통신호등이 있어야 할 정도로 캠퍼스는 도시가 돼버렸다. 상아탑과 거리가 먼 잡동사니가 너무 많이 늘었다. 아름답던 캠퍼스 환경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캠퍼스의 외양과 내연이 바뀐 것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자 이른바 발전된 양태라고 하자. 그렇지만 나는 1972년 발간 된 로마 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Limits to the Growth)를 이럴 때마다 연상한다. 지금의 서울대가 21세기 융합지식체계에 맞게 변하고 학문의 진리가 제대로 천착되고 지성인 고유의 특권인 자유와 비판정신이 깊이 함양돼 국가와 사회가 기대하는 내일의 인재가 양성되고 있는지 자문들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최근 언론에서 정범모 선생 같은 교육계 원로들이 대학이 기사(knight)보다 전사(warrior)들을 배출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대학은 주물로 찍어내 듯 판에 박힌 모조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자유인을 배출하는 학문의 전당이다. 나도 지난달 총장에게 학교 교육의 전근대성과 엘리트 교육이 ‘깊고 큰 리더’를 키우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 보고서를 올린 바 있다. 미래사회를 살기 위한 융합인재의 조건은 (1) 전일주의 사고로, (2) 이분법을 넘어, (3) 감성으로, (4) 관계로, (5) 신비로(noetic), 그리고 (6) 디지그노(designo)로 다. 디지그노는 인지(cogno)에 대칭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인미(認美) 라는 뜻의 조어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고된 나날들을 보내며 제도의 모순을 거역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서울대생들이 한 삶을 살면서 “내 값은 얼마짜리” 이며 “나는 얼마나 나, 진아(眞我)를 알고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할 때가 지났다. 하루빨리 이 캠퍼스의 교육이념이 더 잘 다듬어져 21세기 캠퍼스로 아름답게 완성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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